지리산(090605-07)
산행일시 : 2009. 6. 5. ~ 7(2박3일) 무덥고 흐리고 비
산행코스 : 거림 - 도장골 - 시루바위 - 청학연 - 음양수 - 미산대 - 석문 - 삼신봉 - 청학동
함께한이 : 미산님과 미산 패밀리 6인, 김광현(통영), 산무수리, 둘리, 강석용, 이성규, 황병국, 두소영, 임순만
영신대 비박 산행을 꿈꾸는 성규의 문자로 오래 전부터 계획을 세워 놓았던 지리산행에 블로그 상에서 만나 언제
한 번 함께 산길을 걷고 싶어 했던 미산님의 합류와 둘리님, 산무수리님, 일본에서 일시 귀국한 두소영님, 그리고
히말라야 패밀리(석용, 성규, 병국, 나)의 대 부대가 거림에 모였다. 두지바구 민박집에서 잠시 눈을 붙인 일행들
은 아침상에 나온 나물을 아껴 이틀째 산행 시 비빔밥 재료로 챙기고 6일 오전 10시 통영에서 합류하신 김광현 큰
형님 등 14인의 대 인원이 도장골로 들어간다. 거림 통제소 못 미쳐 우측 도장골 초입에 있는 길상암으로 진입하니
스님께서 나오시면 통제된 길이란다. 숲의 향기를 음미하며 도장골을 따라 초임에 드니 “이영회 부대 아지트 터”
가 나타나고 지도를 살피니 등로는 한참 계곡을 따르도록 되어 있다
계곡을 가로질러 나란히 걷다보니 Y자 삼거리가 나오고, 시그널은 오른쪽으로 많이 붙어 있었으나 통영 큰형님께서
그 길로 가면 너무 길게 올라가고 마지막에 깍아 지른 듯한 고바위 길을 올라가게 되니 왼쪽 길을 택하자 하고,
결국 이번 산행이 모처럼 등로가 없는 산길을 걷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일반적인 등산로는 없는 고로쇠 물을 채취
할 때 사용하는 호스를 따라 비 정상적인 길을 따르다 보니 도장골로 흘러드는 작은 계곡이 나오니 이 계곡이
작은 도장골일 것이라 가늠해보며 못 먹어도 Go. 잠시 더 진행하다보니 그 길마저 없어지며 등행을 가로 막는다.
지난 2월에 한번 다녀가셨다는 큰형님의 의견대로 좌측 능선에 붙어 보자며 산죽 숲으로 길을 개척하며 치고 올라
서니 기대하는 등로는 나타나지 않고 숲이 계속된다. 결국 이후로 원시림을 뚫는 작업은 계속되고 조망마저 확보
되지 않아 대강의 방향만을 가늠하며 고행 길(즐거움?)을 지속한다.
“청학연”에 도착하여 점심을 하기로 하였었으나 언제까지 이 오름 짓을 계속해야 할지 모르기에 적당한 자리에서
둘리표 새싹 비빔밥으로 허기를 해결한 후 산행은 계속되고, 급기야 시루바위가 가까워 오며 정상적인 등로를 만나
게 되는 사투(?)를 벌인 것이다. 약간의 바위지대를 올라서서 후미를 기다리고 있는 일행들을 만나 긴 휴식을 취한
후 꿈에 그리던 청학연을 알현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오매불망 고대하여 찾게 된 “청학연”!!! 산모가 해산의 고통이 있어야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는지 쉽게 다가 가려했던 나를 꾸짖고 시험 한 것은 아닐까?
(청학연)
[청학(靑鶴)은 날개가 여덟이고 다리가 하나이며 얼굴이 사람같이 생겼다는 상상의 길조(吉鳥)로서 신선이 타고
다닌다는 전설의 새라고 한다. 이 새가 울면 천하가 태평해진다고 하여 옛 사람들은 청학이 사는 청학동을 신선의
고장이라 여겼다. 이상향의 청학동 위치는 지금의 삼신봉 아래 청학동과는 다른 개념이다.]
촛대봉과 시루봉(장군봉) 능선 중간 서쪽 아래 해발고도가 1500m도 넘는 세석고원에 신비한 연못이 있다.
자연 상태의 연못이 아니고 청학동의 이상향을 완성시키는 의도에서 옛 선인들이 의도적으로 지형을 갖추려는 듯
인공으로 조성된 연못이다. 대슬랩이 앞 물을 막아주고 둥글게 돌조각을 세워 뒷물 길을 막았다.
청학 연못의 길이는 대략 12-18m, 넓이는 대략 7-9m 정도 되며 깊이는 대략 1m내외로 짐작되는 타원형의 연못이며
대슬랩에 새겨진 몇 개의 파자(破字)가 있는데 정확한 해석은 아직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청학연못의 조성 시기는 사람에 따라 다소 엇갈리는데 대략 150년 전쯤 됐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선인들의 기록을 기초로 하여 멀리 고려조까지 거슬러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인구에 회자되는 얘기에 의하면 연못에
서는 심심찮게 용오름 현상이 일기도하고 연못 풍경을 찍을라치면 여태 문제없던 카메라가 갑자기 작동을 멈추는가
하면 갔던 길을 따라 다시 찾아오면 어디로 사라졌는지 연못이 보이지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는 지리산 남쪽이 시원스레 조망된다. 신선의 땅 청학동이 실재한다면 하동 악양 땅과 더불어 으뜸으로 치는
곳이 세석고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연못의 바닥 어딘가에 청학동으로 가는 비밀의 문이 있는 것은 아닐까. [퍼온 글]
청학연에서 한참을 머물다 당초 영신대에서 한둔 하려던 계획을 미산대로부터 초대를 받아 세석을 경유하지 않고
미산대로 향하니 거림골 코스를 가로질러 영신사지터가 있다하여 들러보고 음양수에서 식수를 구하고 있으니 장
대비가 쏟아진다. 지리를 오면서 기상청의 예보를 믿고 비는 절대 없을 것이라 큰 소리 친 자신을 질책하고 5분여
거리를 두고 있는 미산대에 당도하여 미산루와 히말라야의 집을 설치하고 한 잔을 준비한다.
통영 큰형님께서 준비 해 준 장어를 안주로 일본의 두소영님이 협찬한 “조니불루”, 이원장의 “음양곽주”, 미산
팀의 “마가목주”, 큰형님의 가져 온 “주정 60도의 이름모를 술”기타 소주, 맥주 등 끝없이 좋은 술들이 등장한다.
미산루를 방문하여 선배님을 큰형님으로 모시기로 한 후 부족한 잠 탓에 세상모르고 골아 떨어졌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니 간밤에 작은 사건도 하나 있었다는 소리도 들리는 가운데 미처 먹지 못하고 남아있는 꽃등심
을 안주로 해장술을 마시고 석용표 하이라이스 등으로 식사를 한 후 끝내 영신대를 들르지 못해 아쉬움이 남아있는
큰형님을 보내드리고 삼신봉을 향한 남부 능선길을 걷는다.
산에 들면 언제나 그렇듯이 편안한 능선 길을 걸을 때의 느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나를 행복에 젖게 한다.
운무로 인해 비록 천왕과 장쾌한 자리 주능선을 조망하지는 못했으나 오히려 신비감은 나를 더 황홀하게 만드는
가운데, 석문을 지나 세석으로부터 7.5Km 떨어져 있는 삼신봉에 다다라 맛보는 둘리표 비빔밥은 산에 들 때의
행복감을 극대화시키기에 충분하다.
청학동으로 하산하여 “미산 패밀리”와 “히말라야 패밀리”의 아쉬운 작별은 더욱 지리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도록
하게 하는 일련의 훈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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