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팔산악회

영남알프스 종주기(김세봉)

히말라야2 2006. 9. 10. 19:13

  2006년 8월 5일 토요일 맑음

 

    이른 아침 시간. 6시 40분. 커다란 배낭가방을 둘러맨 일군의 용고 동문들이 아침 공기를 가르며 서울역 주변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하였다. 7시 3분 부산행 KTX에 몸을 맡긴 채 그들이 제일 먼저 착수한 작업은 햄버거로 입을 메꾸는 일이었다.

9시 45분 부산에 도착하여 전철을 갈아탔다. 서울과 달리 이곳에는 매표소가 따로 없고 무인 판매기만이 덩그마니 놓인 채 우리를 맞았다. 10시 42분 노포동에 내려 이번에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 20여 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여 기다리지 않고 그냥 선 채로 가기로 한 것이다. 기분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 같은 데 입석으로 가게 되니 창연이가 한 마디 한다. 고속도로에서 선 채로 가보기는 처음이라고. 어쨌든 11시 18분 통도사 앞에 도착하여 식사할 곳을 먼저 물색하였다. 대동강이라는 식당에서 적쇠불고기(언양식)와 전통국밥이라는 것을 좀 비싸다 싶은 값을 치르며 산행에 앞서 든든히 배를 채웠다. 순만이와 봉환이가 슈퍼에 가 장을 보는 동안 나머지 일행은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며 잠시나마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12시 46분 다시 출발이다. 이번에는 택시를 탔다. 육상에서 다니는 탈 것은 골고루 탄 셈이다. 통도사 앞을 지나 극락암 앞에 내리니 1시가 조금 넘었다. 잠시 극락암을 둘러 보고 1시 17분에 비로소 산행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수목 사이로 난 찻길이 있었지만 곧 이어 나타난 산길은 가파르기 그지없었고 가끔 너덜 길을 걷기도 하였다. 성권이가 컨디션이 덜 좋은 지 조금 힘들어 했다. 맨 처음 도착한 것이 백운암(白雲菴)이라는 암자였는데 무엇보다도 물이 반가웠다. 뒤에 오는 사람들을 기다릴 겸 해서 물을 몇 박아지 머리에 뒤집어쓰고 나니 상쾌하기 그지없다. 쉬는 동안 등산화와 양말을 잠시 벗은 것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2시 54분에 출발하여 거의 한 시간 정도 걸려 함박재(3시 50분)에 이르렀다. 비로소 능선길을 따라 걷게 된 듯하다. 함박재 근처의 바위 근처에 가니 경관도 좋고 바람도 시원하여 잠시 머무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을 걸어 5시 6분경에 마침내 첫 산이라 할 수 있는 영축산에 다달았다. 해발 1,059미터의 위용을 자랑하는 영축산은 취서산이라고도 불렀는데 예까지 올라와서 정상주 한 잔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각자가 짊어진 짐이 제법 무게가 나가다 보니 기회만 있으면 자기 배낭에 있는 물건을 꺼내 주고 싶어 하는 깊은 속내들을 가끔 보였고, 창연이는 잘 가면서도 입으로는 어떻게 가나 걱정이 태산이다.

   영축산에서 신불재까지 가는 데는 1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주욱 이어진 갈대밭들이 아직 푸르름에도 불구하고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마치 스위스의 완만한 산자락을 연상하는 산 위의 구릉이 연이어져 이곳이 영남의 알프스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나보다. 순만이에 의하면 이곳 말고 충북에도 알프스가 하나 더 있고 일본에도 알프스라는 이름의 산이 또 있다고 하는데 모두 스위스의 알프스와 유사한 데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신불산에 도착한 것은 6시 34분. 이정표를 보니 지나온 영축산과의 거리가 2.95킬로미터이고 앞으로 갈 간월산까지는 2.3킬로미터로 되어 있다. 산 정상에 도착할 때마다 간단히 정상주가 이어졌고, 용두팔산악회의 기를 앞세워 기념 촬영하는 것은 일상처럼 전개되었다.

   언덕밭이를 또 넘어 우리가 묵을 간월재에 도착한 것은 7시 25분. 신월산에서는 오른쪽에 태양이 떠 있는 가운데 왼쪽에 달이 허연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동시에 해와 달을 볼 수 있었는데 성권이 말에 의하면 밝을 명(明)자라고 하였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우리 위치에선 해와 달이 방향이 바뀌어 월일(月日)로 보이니 물구나무선 밝을 명자가 되고 말았다. 해가 저물자 달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에 과연 간월(看月)재에서는 달이 제대로 보이는 가고 생각을 했는데 이거야 말로 착각은 자유라는 거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간월은 달을 본다는 뜻의 간월(看月)이 아니라 간월(肝月)임을 알게 되었는데 도대체 그 의미를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간월재에서는 먹거리와 잠자리 마련을 위해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봉환이와 내가 샘터에 가서 물을 길어오기로 하고, 순만이와 창연이는 텐트를 치고, 나머지는 음식 장만을 하느라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모두가 시장했는지 성권이가 한 30식(서른밥)도 달게 먹었고, 봉환이가 책임지고 끓인 심심하다는 김치찌개(장원이 평)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금새 동이 났다. 늘 새는 것이 술이라지만 그래도 술잔이 서너 순배 돌아야 제 맛인 법. 놀라운 건 창연이가 술을 많이 사양하는 것이었는데 이유인즉 내일 산행에 대한 걱정이 앞서서라 한다. 한때의 진솔한 영웅담도 술잔 속에 녹아들어가고 별들도 뭐를 아는 양 가끔 술잔을 들여다보다간 그만 취해서 달아난다.

   11시 반쯤.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1시 무렵쯤 되었을까. 취객들의 시끄러운 소리에 모두가 잠을 설쳤다. 여러 사람들이 산행에 지쳐 노곤한 몸을 쉬고 다시 내일의 산행을 준비해야 절대 절명의 순간에 웬 고성방가. 시끄러운 한 무리를 어렵사리 물러가게 하니 또 다른 팀이 들이닥쳐 시끌벅적. 참다못한 순만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연 긴장하는 순간, 그래도 순만이는 용케도 햇볕정책을 써서 잘 달래 보냈다. 옆에서 창연이가 들썩들썩 하는데 잘못하다간 일 날까 염려되었지만 창연이도 끝내 잘 참았다.


    2006년 8월 6일 일요일 맑음

   다른 친구들의 코고는 소리가 밤하늘의 정적을 을 깨는 것을 보면 그래도 어느 정도 잠들을 자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분명 눈을 감고 있긴 한데 이게 잔건지 만 건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리 돌아눕고 저리 돌아눕고 전전반측하다가 새벽 4시에는 배낭 사이로 빠끔히 들여다보는 별의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옷가지와 전지, 책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약간 찼지만 여름철이라 추울 정도는 아니었다. 의자에 길게 누어 모처럼 만에 고요한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헤어보았다. 북두칠성은 저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저건 아마 카시오페아 자리든가... 잘 알지 못하는 어림짐작으로 윤동주의 별 헤던 마음을 가지려는 찰나 별똥별 하나가 갑자기 하늘을 가르며 저쪽 하늘가로 스러져갔다. 어린 시절 같으면 위대한 인물 하나가 또 그 별과 함께 사라져갔다고 해야 할 테지만 그러기엔 이젠 어지간히 나이도 들었다는 게 조금은 객 적다. 그런데 저건... 별이 움직인다. 맞다. 움직이는 건 인공위성이라 했다. 고향 하늘 아래 친구들과 조금은 껄끄러운 멍석 위에 누워 별을 보던 것 같은 데 이제 벌써 반백의 나이가 되었구나. 옛날 같으면 별 볼일 없는 나이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듯 낯선 하늘 아래에서 저 별들을 마음껏 대할 수 있다니...

   마냥 누워 있기도 하릴없어서 주변 도로들을 걸어볼 양으로 길거리로 나섰다. 먼저 샘터가로 가 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런데 배에서 신호가 온다. 아뿔싸! 휴지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텐트까지 가는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자칫 잘못하면 뒤척이다 뒤늦게 단잠에 빠진 친구들을 깨울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래도 나는 촌에서 자라 일찌감치 화장실도 아닌 뒷간에서 지푸라기를 꼬깃꼬깃 접어 밑을 씻은 유경험자가 아니던가. 적당한 풀숲을 찾아 아랫배의 고통을 일시에 해결하였다. 주변에 있는 풀과 나뭇잎을 적당히 훑어 휴지를 대용하고 끝으로 한 장 남은 메모지로 마무리까지 훌륭하게 처리하였다. 이를 일러 사람들은 아마도 임기응변(기회를 보아 적당히 응가함)이라고 할 것으로 짐작된다. 

   큰일을 해결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이제 반대쪽으로 산보를 하였다. 차 옆에 텐트들을 치고 있으니 그들이 잠이 깰세라 도둑질하듯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지나쳐야 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계곡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쯤 되면 머리에 전깃불이 하나 들어오는 것은 인지상정. 엊저녁에 샘터에서 등목하다 여성분이 오는 바람에 대경실색하여 꼬리를 감추던 김모씨의 모습을 떠올리며, 때는 이때다 싶어 개울가를 찾았다. 물은 별로 많지 않았지만 이 한 몸을 담그기에는 그런대로 괜찮은 곳을 골라 아침 알탕을 하니 잠 못 이룬 밤의 밋밋함이 일시에 사라지는 듯했다.
   
   텐트 있는 곳으로 올 때 쯤 이제 날은 완전히 밝아졌다. 하늘에 붉은 기운이 물들어 오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모두 동쪽을 향해 주시하고 있었다. 잠시 구름에 가렸다가는 나타나고 나타났다가는 다시 구름 속으로 숨바꼭질하는 태양을 등지고 우리는 그렇게 셔터를 눌러댔다. 창연인가는 아예 입을 벌리고 태양을 먹듯 사진을 찍었고 나를 향해 사진기를 들이대는 순만이에게서도 태양 못지않은 광채가 일었다. 그런데 성권이는 어째서 끝내 모자를 벗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까.

   봉환이가 끓여준 북어미역국을 곁들여 아침을 먹고 둘째 날의 산행이 시작되었다. 출발 시간은 7시 40분. 해발 1,083미터의 간월산은 간월재 지척에 있었기 때문에 20여 분 만인 8시 3분에 도착하였다. 그래도 정상주는 하지 않을 수 없어 봉환이의 상황주를 간단히 맛보았다. 그로부터 약 1시간 뒤인 9시 15분에 배내봉(해발 966미터)에 도착하였고, 거기서부터는 주로 내리막길이 많아 좀 조심스럽기는 해도 별로 힘은 들지 않았다. 

   10시 정각에 배내 고개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자마자 물 한잔을 마시고 나서 머리에 물을 들이부었다. 배내 이모집이라는 가게에서 비로소 순만이가 그리도 찾던 막걸리 구경을 하게 되었다. 내려가서 메로나(아이스크림)를 사주겠다던 봉환이는 메로나가 없자 대신 팥빙수로 열기에 찬 친구들의 가슴속을 시원하게 식혀 주었다. 

   10시 44분에 배내 고개를 출발하여 11시 20분쯤 능동산(陵洞山 : 경남 울주군)에 도착하였다. 잠시 그곳에 머물며 자두를 한입씩 베어물고 다시 출발하여 11시 52분에 쇠점골 약수터에 도착하였다. 산에서는 어디에서건 약수터만 만나면 반가운 법인데, 이곳 물은 특히 시원하여 제 각각 가지고 있던 수통의 물들을 쏟아버리고 새 약수물로 가는 극성을 떨었다. 

   1시 9분에 도착한 곳은 샘물산장. 58년 개띠라는 산장 아주머니의 정겨운 비빔국수가 대인기였다. 남은 쌀을 주인장에게 드렸더니 그냥 있을 수 없다고 손수 동동주를 들고 나오셨다. 가끔은 알아듣기 어려운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뭔가 열심히 재미있게 말씀하시는 주인장의 옆에는 굴러들어왔다는 황구 한 마리가 주위를 맴돌았다. 약간 피곤한지 10분만 자고 가자며 장원이가 바위 위에 요염한 포즈를 취하고 누워 있자 누군가 또 셔터를 눌러댄다.

   그러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2시 12분 출발하였는데 천황산까지는 2.37킬로 미터였고 40분 거리라 표시되어 있었다. 창현이는 도저히 40분가지고는 안 될 것 같다고 하였지만 2시 45분에 도착하여 33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해발 1,189미터의 천황산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내려오면서도 몇 차례 더 좋은 경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댔다.  

   3시 14분 사자봉 쉼터에서 창연이가 맥주를 샀다. 재약산에서 먹을 것이라며 각자 하나씩 나누어주어 챙겨가지고 앞서 간 봉환이를 따라 재약산을 향해 피치를 올렸다. 3시 48분 뙤약볕 속에 마침내 마지막 산인 재약산(載藥山 : 해발 1,108미터)에 도착하였다. 기념촬영을 하고 시원한 그늘을 찾아 사자봉 쉼터에서 가지고 온 맥주를 꺼내 정상주를 대신하였다. 근처 바위에 바람이 시원하게 일어 그곳에서 바람을 맞았다. 지금까지 돌아온 산을 저 멀리 바라보면서 과연 저것이 우리가 온 길인지 자못 의심스러워하면서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게들 여겼다. 나를 제외한 5명은 대자연 앞에 거풍인가 뭔가를 하며 즐거워했다. 산행을 한 뒤 알탕을 하면 좋다는 봉환이의 글을 보고 어느 여자 분이 산에서 내려와 알탕을 먹었다는 댓글을 달았다는 얘기로 한때 산중이 시끄럽도록 웃는 재미도 산중의 일락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4시 12분에 하산하기 시작하여 계곡을 만나 목욕을 했으면 하였으나 의외로 물이 좋지 않아 탁족을 잠시 하는 데 그쳤다. 5시 5분쯤 층층폭포 앞의 구름다리에서 잠시 사진 촬영을 하고 서둘러 길을 내려와 표충사에 도착하니 시계는 6시 12분을 가리켰다. 대절한 두 대의 택시에 분승하여 밀양으로 나가 일부는 간단히 목욕을 하고 함께 저녁을 들었다. 서울행 9시 KTX를 타고 상경하여 예정 시간보다 9분 늦은 11시 25분쯤 서울역에 도착하여 각자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아쉬운 작별을 고하며 흩어져 갔다. 이틀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는 뜻 깊은 산행이었다. 같이 참여한 친구들 모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같이 산행에 참여한 정다운 친구들의 이름을 한번 되뇌어 본다. 임순만, 송봉환, 김성권, 이장원, 원창연. 나와 이들은 이제 영남알프스와 깊은 인연을 맺고 언제까지나 잊혀지지 않는 또 하나의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다. 동참하지 못한 친구들도 다음 번에는 반갑게 산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용두팔산악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대산 산행기  (0) 2006.12.06
친구들과 명성산 억새밭을...  (0) 2006.10.30
[스크랩] 영남알프스  (0) 2006.08.11
간월재의 일출  (0) 2006.08.08
[스크랩] 영남알프스 산행기?  (0) 2006.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