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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북미대륙 최고봉 매킨리 [1] *-

히말라야2 2008. 9. 19. 13:57

 

                       북미대륙 최고봉 매킨리 [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설산’을 다시 찾다
         웨스트버트레스 루트 따르며 데날리의 미소 재발견

정오를 넘어서자 정상으로 향하는 산악인들이 점점 많아진다. 발라클라바 밖으로 드러난 표정은 대부분 일그러져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피켈이나 스톡으로 균형을 잡아가면서 슬로모션으로 가파른 설릉을 한 발 한 발 올라선다. 수도자들 행렬은 길게 이어졌다. 설사면을 가로질러 데날리 패스로 올라서고, 가파른 설사면을 거쳐 풋볼 필드를 가로지른 다음 급사면을 치고 올라 정상 능선에 올라섰다. 그리곤 하나의 정점을 이룬 북미 최고봉 매킨리 정상에 한 명 한 명 우뚝 섰다.


▲ 커니스를 이룬 설릉을 따라 북미 최고봉 정상에 올라서는 김덕환씨. 얼굴을 내놓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추위와 바람이 몰아쳤다.


선경 펼쳐지는 웨스트버트리스 따라 등반

폭풍설을 헤치며 모터사이클힐과 윈디코너를 거쳐 매킨리시티(4,300m)에 도착한 이튿날인 5월25일은 랜딩포인트(2,100m)출발 이후 처음 맞는 휴일이다. 매킨리시티는 이름에 걸맞게 수많은 팀들의 텐트들이 커다란 부락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 모두 하이캠프로 올라설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23, 24일 이틀간 불어닥친 폭풍설 때문에 하이캠프인 데날리빌리지(5,250m)에는 발이 묶인 산악인들도 많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정오경, 체코 남녀 산악인 2명이 우리 텐트 옆에 눈을 파는 모습에 김덕환씨(동국대 OB)가 다가가 따스한 물 한 잔씩 건네준다. 등정에 성공한 뒤 폭풍설에 사흘간 하이캠프에 갇혀 있다가 지금 막 시티로 내려선 이들이다. 환한 표정의 여자와 달리 남자는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동상 때문이다. 그는 매킨리시티 의료텐트를 방문해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상태가 심각해 도보로 하산하지 못하고 이튿날 오전 헬기로 후송되어야했다. 시티에 머문 1주일간 이렇게 동상 환자를 후송하기 위해 헬기가 세 차례나 떠올랐다. 매킨리에서는 역시 추위와 바람이 가장 위험한 방해물이다.


▲ 카힐트나 빙하를 따라 올라가고 있는 산악인들. 경비행기로 접근하는 사이 광대한 설원을 걷는 산악인들의 모습은 흰 도화지 위에 점을 찍어놓은 듯했다.


“어휴, 이러다 기회도 없는 거 아니에요?”

예상치 못한 폭풍설을 C2와 C3에서 만나고, 시티에 올라섰는데도 날씨가 좋지 않자 모두들 불안해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27일 바람이 잔잔해진 틈을 타 헤드월(Head Wall·4,940m) 위쪽 설릉에 짐을 올려놓고 시티로 내려와 레인저막사 앞에 적어놓은 일기예보를 확인한 결과 30일 바람이 15~20m/h로 가라앉는다고 한다. 시티에서 하루 쉬었다 하이캠프로 올라 그 다음날 정상공격에 나서기로 계획을 세워놓았기에 딱 맞는 날짜였지만 그래도 하루를 당겼으면 하는 마음에 갈등이 인다. 그렇지만 내일 날씨는 오늘과 비슷한 풍속(30~50m/h)에 구름이 많겠다고 나와 있다. 정오를 넘어서자 몇몇 팀은 헤드월을 올라선다. 악천후에 등반이 여러 날 늦춰지다 보니 일정에 쫓기게 된 팀들이다.

“시티에 오른 첫날 소주가 얼어붙더니 어젯밤은 텐트 안의 기온이 영하 16℃나 되었어요. 정말 대단한 추위네요. 이젠 정말 누에고치의 고통을 알 것 같아요.”


▲ C2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김병석씨. 캠프 구축시에는 눈을 파내고 눈벽돌로 담을 쌓아 바람에 대비해야 했다.

김덕환씨는 아침에 눈을 뜰 때면 누에고치가 떠오른다고 말하곤 했다. 우모복을 입은 채 침낭을 푹 뒤집어쓰고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입김이 닿는 옷과 침낭 부위는 허옇게 서리가 끼어 있거나 아예 얼음이 얼어붙어 있곤 했다. 밤 11시까지도 환한 백야가 이어지다 보니 답답해도 침낭을 얼굴까지 가리지 않으면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밤새 몰아친 바람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룬 28일은 결혼 20주년 기념일이다. 집에서 아이들 치다꺼리하느라 여념이 없을 아내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 그지없다. 누에고치 생활이 뭐가 그리 좋아서 특별한 날마저 집을 비웠는지.

“형, 뭐 하세요?”

14년 전 비슷한 시기에 매킨리시티에 머물러 있던 기자는 텐트 천에 세계 지도를 그리는 강준호 형을 보곤 멀쩡한 텐트를 망치는가 싶어 왜 그러냐고 물었다.

“필석아, 아시아에선 에베레스트가 가장 높고, 유럽은 엘브루즈, 북미는 여기, 남미는 아콩카구아, 아프리카는 킬리만자로가 대륙을 대표하는 최고봉으로 알고 있는데, 나머지 2개 대륙 최고봉은 어디냐?”

강준호 형은 엉뚱한 사람답게 뚱딴지같은 질문을 했다. 당시 대장으로 참가한 박영석씨에게 대답을 들은 강준호 형은 각 대륙에 최고봉의 이름을 적어넣곤 깃발 표시를 했다. 언젠간 태극기를 꽂겠다는 각오였다. 그리곤 “좋다, 해 보자” 하곤 7대륙 최고봉 도전을 발표했다. 그 한 해 전 엘브루즈(5642)를 오르고, 97년 킬리만자로(5,895m)도 등정한 그는 98년 1월 함께 도전한 아콩카구아 정상에 오른 뒤 하산길에 추락사하고 말았다.

당시만 해도 매킨리를 찾는 사람 가운데 7대륙 최고봉 완등을 꿈꾸는 이는 거의 없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외국 산악인들은 시티의 캠프를 두리번거리다 말이 통하는 산악인을 만나면 자기가 오른 다른 대륙 최고봉에 대해 얘기하다가는 상대방에게 매킨리 다음은 어느 봉이냐 묻곤 했다. 매킨리를 찾는 많은 산악인들에게 7대륙 최고봉 완등이 최고의 관심사였다.

30일, 이제 하이캠프로 올라서는 날이다. 대개 헤드월에 햇살이 비춰져야 등반을 시작하지만 우리들은 서둘렀다. 한낮에 땀을 흘리며 등반하는 것보다는 조금 추울 때 걷는 편이 힘이 덜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틀 전 짐을 데포시킬 때에 비해 힘이 더 든다. 이런 체력으로 정상을 오를 수 있을까 염려되기는 했으나, 10피치 주마링 구간인 헤드월에 접어들자 속도가 빨라지고 이틀 전보다 30분 빠른 3시간 반만에 헤드월 상단에 올라선다.

헤드월 위쪽 설릉에 묻어두었던 식량과 장비를 배낭에 집어넣자 제법 묵직하다. 가파른 설릉을 따라 엄지손가락바위(Washburns Thumb)에 도착할 즈음 미국 클라이머들이 추월해간다. 맹인 한 명을 정상까지 올리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산악인들이다. 대원들은 무척 피곤한 표정을 짓지만 맹인 산악인은 굳은 의지 속에서 하이캠프를 향해 힘차게 올라 우리를 머쓱하게 했다.


▲ (왼쪽) 폭풍설과 화이트아웃 속에서 C3를 향해 오르다 김덕환씨가 암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오른쪽) 모터사이클힐을 올라서는 산악인들. 커니스를 이룬 설릉이 아름다운 곳이다.


“와~, 정말 멋있네요. 그림 같아요.”

웨스트버트레스는 육체적·정신적 고통만 주는 능선이 아니다. 헤드월을 올라설 때는 각양각색의 텐트들이 캠프촌을 이룬 매킨리시티가 아름답게 바라보이고, 그 뒤로 웅장하게 솟구친 헌터(Hunter·4,442m)와 포레이커(Foraker·5,304m)는 영롱한 보석처럼 반짝이며 감동케 했다. 그러다 헤드월을 올라선 다음 능선을 따르노라면 구름 뚫고 솟구친 설릉이 자아내는 선경에 취해 넋을 잃고 말았다. 게다가 데날리패스 왼쪽으로 고개를 빼꼼 치켜들고 있는 북봉(5,934m)은 어서 오라 불러대는 듯하다. 이런 풍광에 데포해 놓은 짐을 배낭에 넣어 한층 힘겨운 상황인데도 김병석씨(광양 그루터기산악회)와 김덕환씨는 즐거움이 넘치고 멋진 풍광을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풋볼필드 올라서자 옛 기억 떠오르며 흥분 일어

엄지손가락바위를 올라서자 여자 산악인을 선두로 4명의 외국 클라이머들이 내려온다. 어제 하이캠프로 향했던 이들이다. 표정이 어둡다. 오늘 오전 정상공격을 시도했으나 강한 바람에 밀려 포기하고 시티로 내려서자니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은 분명 내일 날씨가 더욱 좋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계획된 일정에 쫓겨 오늘 정상공격에 나섰을 것이다.


▲ 피곤한 표정으로 웨스트버트레스 능선을 따르는 김병석씨. 포레이커와 카힐트나 빙하가 바라보인다.

 

매킨리에 도전한 수많은 팀들은 3주 안팎의 일정으로 등반에 나선다. 하지만 이번 시즌처럼 대엿새씩 날씨가 좋지 않은 상황을 만난다면 결국 등반 가능한 기간은 2주밖에 되지 않고, 그렇다보니 원정 종료시점이 다가오면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등반기간을 2주 정도 잡은 우리 역시 답답한 마음에 어제 하이캠프로 올라설까 망설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딱 한 번의 기회를 가장 좋은 날에 맞추는 게 현명하겠다 싶어 오늘 하이캠프로 향하는 것이다.

매킨리시티를 출발, 6시간 반만에 도착한 하이캠프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다. 외국 산악인들 대부분이 내일 등정을 앞두고 체력을 최대한 아끼고 마음자세를 가다듬는 듯싶었다. 우리로서는 캠프지를 만드는 게 시급한 일. 시티의 5인용 텐트보다 작은 3인용 텐트지만 삽으로 눈을 파내고, 톱으로 눈블럭을 잘라내 텐트 주변을 둘러 쌓노라니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주변의 외국 산악인들이 우리 캠프에서 눈길을 떼지 않는다.

하이캠프에 올라 있는 70여 명의 외국 클라이머들은 대부분 사나흘씩 묵고 있었다. 내일 등정길에 나서겠다는 우리 얘기에 의아스런 표정이다. 이들은 마지막 캠프에서 체류하는 시간을 짧게 하고 등정을 시도하는 게 좋다는 우리의 등반상식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보다는 5,250m대 캠프에서 여러 날 쉬면서 적응기간을 갖고 정상을 향하는 게 성공확률이 높다는 판단이다.

완성시킨 텐트는 시티 캠프에 비해 좁고 낮지만 그래도 아늑하다. 눈을 녹여 차를 여러 잔 마시고 동결건조미 두 봉으로 저녁을 해결한 다음 ‘빌리지 산책’에 나선다. 레인저캠프 부근의 커다란 렌치에는 로프가 잔뜩 감겨 있다. 사고자를 헬기접근이 가능한 매킨리시티까지 후송하는 데 쓰이는 구조장비였다. 하이캠프와 매킨리시티와의 표고차가 1,000m에 이르니 결국 거의 1,000m 이상의 로프가 감겨 있는 셈이다.

하이캠프는 과연 ‘데날리빌리지’라는 이름이 어울릴 만큼 아늑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매킨리시티의 캠프들이 개미만큼 작게 보이고, 헌터와 포레이커뿐 아니라 카힐트나 빙하로 뻗어내린 웨스트버트레스 설릉, 그리고 그 너머 피터즈빙하(Peters Gl.) 일원의 설산들과 그 너머로 거대한 평원까지 몽땅 바라보인다. 설산의 아름다움과 대평원의 편안함이 함께 곁들여지면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일찍 출발하는 게 성공확률이 높다는 형 말이 맞는 것 같네요. 지금부터 준비하죠.”


▲ (왼쪽) 하이캠프인 데날리빌리지. 표고차 300m의 데날리패스로 이어지는 허릿길이 빤히 바라보인다. / (오른쪽) 헤드월을 향해 줄지어 오르는 산악인들.

 

새벽 4시30분, 김덕환씨가 깨운다. 기껏 해야 대여섯 시간밖에 안 잔 것 같은데 워낙 푹 잠이 들다보니 몸이 상쾌하다. 그래도 깨죽과 잣죽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뜨거운 물을 보온통에 채워 넣은 다음 장비를 챙기고 나니 7시가 다가온다. 우리 캠프 위쪽에 텐트를 치고 있는 AAI(America Alpine Institute) 상업등반대 대원들은 우리 눈치를 보며 출발하지 않는 분위기다.

7시 정각, 데날리빌리지 설원을 가로질러 데날리패스로 접어든다. 그제야 AAI팀 10명이 뒤따라온다. 설벽을 가로지른 허릿길을 느림보 걸음으로 가노라면 그들에게 방해도 되고 나에게도 부담될 듯싶어 양보하자 모두들 고마워한다. 안자일렌 상태로만 해도 패스까지 오르는 데 큰 문제없을 것 같은데 앞장선 김덕환씨는 확보물마다 자일을 통과시키며 안전에 최선을 다한다. 마음은 벌써 패스를 올라섰는데 몸은 한참 밑에 머물러 있다. 14년 전 패스를 올라서는 데 2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 같은데 2시간이 지나는데도 데날리패스가 아직도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AAI팀 꼬리가 고개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도 20분쯤 지나서야 패스에 올라선다.

▲ 데날리패스에서 풋볼필드로 향하는 산악인들.

 

깊숙한 안부를 이룬 패스에는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AAI팀 대원들은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급경사 능선길로 향한다. 따스한 물 한 모금에 간식으로 체력을 보강하고 급사면으로 접어든다. 젊은 남녀 한 쌍이 오버행 바위 아래서 엉거주춤한 상태로 있다. 여자는 막 볼일을 끝낸 듯하고, 남자는 여자의 불편함을 달래주려는 듯 옆에서 껄껄대며 오줌을 눈다. 그리고 1시간쯤 더 올라갔을 때 뒤따라오다 우리를 추월해 가는 그 여자에게 김덕환씨가 다가가 벙어리장갑을 끼워준다. 매킨리 등반 중, 특히 정상을 향하다 잠시라도 장갑을 벗는다면 손가락을 자를 위험마저 있다. 그런데 고소증이 심하다보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이다.

“형, 그 속도로 정상까지 갈 수 있겠어요?”

이제 완경사 설릉을 따라 풋볼필드(Football Field)로 올라서는 클라이머들과 그 너머에 솟구친 정상 능선이 보인다. 능선 오른쪽 턱이 카힐트나 혼(Kahiltna Horn·약 6,096m)이요 왼쪽 끄트머리가 정상이다. 김덕환씨가 100발짝에 한 차례씩 쉬면서 숨을 고르자 그런 속도로 갈 수 있겠냐고 묻더니 선두 자리를 내게 넘긴다. 아무래도 속도가 처지는 나를 앞장세우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 헤드월을 오르다 쉬고 있는 김덕환씨와 김병석씨. 캠프촌을 이룬 매킨리시티와 헌터가 바라보인다.


/ 글 한필석 차장대우 / 월간 산 [465호] 2008.07

출처 : 미래를 준비하는 삶
글쓴이 : 소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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