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그리고...
2006. 6. 29.(목)
늦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맑은 날씨다.
서둘러 등반 준비를 하자고 재촉하니 능선 상에는 40~60마일의 강풍이 불고 있어 등반이 불가능 하단다.
오늘 현재 이곳에는 우리 말고도 두 팀이 더 있는데 어느 팀도 등반에 나서질 않는 것이 바람 때문일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도전의 기회는 내일 하루???
27일에 끝냈어야할 등반을 몇 사람의 컨디션 때문에 미뤄져 30일까지 5캠프에서 지내야 하다니...
매킨리씨티와 비교하면 지옥과 같은 이곳에서...
맑은 날씨지만 정상을 바라보니 설연이 날리는 게 보통의 바람은 아닌 것 같다.
어느 부분은 좌에서 우로, 어느 부분은 우에서 좌로 설연이 날리는 게 엄청난 돌풍으로 보인다.
Tim에게 등반을 하자니 지금 올라가면 손발 다 자를 뿐만 아니라 나이프릿지에서는 사람도 날아갈 정도이며
정상까지는 가지도 못한단다.
우연찮게 용주형 텐트로 가서 컨디션을 묻던 중 어제 저녁에 Tim이 신선배에게 전해줬다는 메모를 확인하니
거기에는 자신들의 스케줄과 뒷면에는 7월 2일까지의 일기예보가 적혀있었다.
6월 29일부터 7월 2일까지 구름 조금, 40~60마일의 강풍으로 등반불가로 나와 있는 것이다.
더구나 고소에서의 식사도 알파미, 건조비빔밥, 스프 위주라서 오래 버티기가 힘들 것 같아 빅샘과 상의를 했다.
나는 어차피 우리에게 주어진 내일까진 정상 등반이 불가능하니 차라리 오늘이라도 일단 철수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얘기하니 빅샘도 동감이라며 일단 전체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회의 끝에 오늘 아침 8시에 매킨리씨티로 일기예보를 한 번 더 확인하고 변함이 없다면 일단 매킨리씨티로
철수를 하기로 결정했다.
회의결과 용주형을 제외하곤 모두가 철수를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차마 먼저 말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점으로 식사를 한 후 14:40에 철수를 시작한다.
철수 시에는 조 편성을 바꿔서 나는 2조(김인백, 신경섭, 나, Tim)에 속하여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 중에 앞에 있는 신경섭 선배가 너무도 힘들어 하신다.
내리막길인데도 몇 걸음 걷지 못하고 주저앉아 “지로”를 자주 외치신다.
날씨가 점점 안 좋아 지는데 너무 운행을 하지 못한다.
고정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곳에서 카라비너 통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자꾸 자일만 꼬고 있다.
내가 내려가서 도와주려니까 뒤에서 Tim이 잔소리한다.
그래도 못 들은 척하고 �아 내려가서 보니 자일을 발아래서 풀면 될 것을 전혀 상황대처를 못하고 있다.
“순만씨 미안해~ 내가 좀 힘들어서 그래, 숨이 너무 가쁘다”라며 자신 때문에 속도가 늦은 점을 미안해한다.
16:30에 힘들게 헤드월 위에 도착을 했다.
신선배에게 짐이 너무 무거우면 내게 좀 넘겨 달라고 하자 괜찮다며 사양하신다.
구름을 동반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니 제법 추워진다.
헤드월 위에서 17:00쯤 출발하여 Zero 와 Clear를 외치면서 하강을 거듭하던 중 바로 앞에 신선배와 연결된
로프가 갑자기 팽팽해진다.
“아마도 슬립을 먹었겠지” 하며 빨리 정상적으로 운행 할 수 있기만을 기다리는데 도무지 팽팽하게 당겨지는
자일은 느슨해 질 줄 모른다.
안되겠다 싶어 “쉴 때는 Fix rope에 주마를 고정하라”고 큰소리로 외치는데 잘 들리질 않는 지 대답이 없다.
나는 앞으로 매져 있는 안자일렌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듯 답답하다.
흘러가는 구름 사이로 잠깐 신선배가 매달려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아마도 탈진 한 것이 아니가 싶다.
신선배 아래 있는 김인백씨로부터도 선배님이 의식을 잃은 것 같다는 신호를 보낸다.
Tim에게 전달하니 나를 추월하여 신선배님께 다가가더니 곧바로 인공호흡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심장마비인지? 아니면 탈진해서 의식을 잃은 것인지 모르겠다.
제발 탈진으로 인한 의식불명 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
앞 조로 내려갔던 Greg가 올라와 신선배님과 연결된 자일을 끊고 나와 김인백을 연결하고 먼저 테라스 까지
하산을 했다.
자일 한 동으로 모두 연결하여 철수를 하는 중에 레인저 구조대 15~6명이 구조 길에 나선다.
C4에 도착하니 레인저들이 우리의 Camp site를 정비해 놓고 식당 텐트를 설치 할 곳을 파 놓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 팀에서 사고가 있는 것이 전체에게 많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 것 같았다.
저녁을 준비하면서 초조한 마음으로 바라보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식사를 하는 중에 레인저의 구조대장 쯤으로 보이는 John이 와서 소식을 전한다.
신선배님은 살아 있고, 동상기가 약간 있기는 하나 생명엔 지장이 없으니 염려 말고 휴식을 취하고 있으라고 한다.
일행 모두가 안도의 한 숨을 쉬고 식사를 마친 후 초조한 마음으로 빨리 하산해 오기만을 기다린다.
밤 11:00가 다 돼서야 신선배님이 구조대 사무실로 도착을 했다.
궁금하기도 하고 빨리 보고 싶어 쫓아가려 하는데 잠시 후 소식을 전할 테니 Tent에서 대기를 하고 있으란다.
11:30경 John과 Tim이 몇 명의 구조대원들과 같이 Tent로 다가온다.
일행 모두가 궁금증에 쫓아나가 마주서니 “Shin is dead"라고 전한다.
“Oh my god" 생명엔 지장이 없다더니 이게 왠 날벼락 이란 말인가?
언제, 왜 돌아가신 거냐고 물으니 구조대 사무실에 도착해서 돌아가셨으며, 자세한 사인은 추후 앵커리지의
병원에서 확인해야 된다고 한다.
답답하다.
미치겠다.
우리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도 간절히 기도했건만...
매킨리란 곳이 이리도 험하고 사나운 곳이란 말인가?
꼭 그렇게 우리의 일행을 데려가야만 하는 곳인지?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나를 배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매킨리여~
이제 앞으로의 남은 일정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어서 빨리 눈 위를 벗어나고만 싶다.
최소한 그 어떤 조건이라도 이 지긋지긋한 눈 위를 빨리 벗어나고만 싶다.
신선배님의 주검을 전달 받은 뒤부터는 하늘도 슬펐는지 밤새도록 많은 눈을 뿌려대고 강한 바람이 불고 있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 같다.
용주형은 잠시 잠이 든 사이 꿈에 신선배님이 옷을 벗고 나타나 같이 있자고 달려 왔단다.
나도 간밤에 잠시 꿈을 꾼 듯 했는데 가위에 눌렸다.
6월 30일(금)
<매킨리씨티에서의 화장실>
날씨로 봤을 때 어제의 철수 결정은 대단히 현명한 선택이 되었다.
그러나 신선배님이 유명을 달리하는 사고가 난 것에 대하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밤새 쌓인 눈이 무릎을 넘게 빠진다.
화장실 가는 길은 러셀을 해야만 가능할 정도로 많은 눈이 쌓여있다.
어제부터 밤새도록 내린 눈은 설탕 같은 아주 작은 입자의 눈이지만 워낙 많이 오니 순식간에 50Cm가 넘는다.
이곳은 구름만 지나가면 많은 눈을 뿌려 한없이 쌓아놓는다.
낮에는 온도가 올라가 포근하여 눈이 녹아 깊이 빠지게 되므로 운행하기가 힘들어 밤에 운행하여 내려가잔다.
특히 윈디코너 통과 시에는 엄청남 바람이 예상되니 바람이 잦아들거든 걷기로 하고 텐트 안에서 옷을 전부
껴입은 채로 시체놀이를 한다.
신선배님을 후송하기 위한 헬기도 오질 않는다.
이곳에 올라오는 헬리�터는 특수연료를 사용하는 비행기란다.
일반연료로는 산소가 부족하여 연소가 되지 않기에 올라 올 수조차 없단다.
빅샘이 레인저 사무실에 다녀오더니 이미 우리의 사고 소식이 국내에 알려져 한국산악회에서는 사고대책본부가
차려졌으며 기상청과, 한국산악회 외무부 등에도 거의 소식이 전달되었고 알래스카 영사부에도 이미 알고 있단다.
신선배님 사모님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인천공항을 거쳐 이곳 앵커리지로 오실 모양이란다.
전직 차관 출신이어서 인지 모두들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 일행들 모두의 가정에도 소식이 전달된 것 같은데 와전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운명하신 신선배님께는 죄송하지만 가족들이 놀라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와실라의 오갑복 선배님도 가장 먼저 소식을 접하고 사고 수습 준비 및 대기 중이라는 소식이다.
빨리 이 지긋지긋한 설원을 벗어나야 할텐데..
앞으로 갈 길도 정말 걱정이다.
이제부터는 썰매를 뒤에다 달고 모터싸이클 힐 등 급경사면을 내려가야 하는데 처음으로 격어보는 운행 방법이라
심히 걱정이 된다.
내려가는 고생길이라도 날씨가 좀 도와줘야 될텐데...
오후 7시 30분 맑게 개인 쾌청한 날씨다.
저 멀리로 낮은 구름만이 깔려 있을 뿐 헌터봉과 포레이커가 너무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아무쪼록 하산을 위한 하루의 날씨만이라도 좋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해 본다.
아~~~ 날씨여~~~
오늘 쓰는 일기가 산(눈)속에서 쓰는 마지막 일기이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수첩을 접는다.
밤 11:00 출발키로 하였으나 강한 바람과 폭설로 또 다시 고립된다.
오늘은 그냥 텐트에서 휴식을 취하고 내일 날씨를 확인하고 출발하기로 한다.
텐트 안에서 모든 짐을 꾸려 놓은 채 헬맷을 벗고 오버팬츠와 오버자켓을 입은 채로 침낭만 펴 놓고 잠을 청해본다.
그러나 강한 바람과 폭설은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제 이곳 매킨리씨티에는 우리를 포함하여 6개 팀 만이 있을 뿐이다.
다른 팀들도 모두 철수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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