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타

자일(Seil)

히말라야2 2008. 7. 22. 10:12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산악인들이 즐겨 부르는 산노래 가운데 ‘자일의 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잘,웃지도 속삭이지도 않지만,,,

자일에 맺은 정은 레몬의 향기에 비기리오…

상가의 휘황한 불빛도 아가씨들의 웃음도 좋지만,

산사나이는 이 조그만 정으로 살아간다오…]


 

산꾼의 정서를 진솔하게 표현한 이 노래처럼 자일은 단순한 등반 장비만은 아닙니다.

산악인의 상징이기도 한 자일에는 서로의 몸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하나로 묶어준다는 뜻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어떤 산꾼은 자일에는 피가 통한다고 말하기도 한다오.

자일의 정을 극적으로 표현한 이 말에는 끈끈한 의미와 상징이 내포되어 있기도 합니다.

 

흔히 한 자일에 묶인 등반조를 자일 파티(seil party)라 부릅니다.

이 말은 독일어(seil)와 영어(party)가 합성된 국적불명의 일본식 표현으로 정확한 용어는

자일 샤프트(seil schaft)가 맞습니다.

 

일본에서 히트를 쳤던 닛타 지로의 장편소설 제목 <자일 파티>를

그대로 번역 소개하는 바람에 국내에서도 그렇게 불려졌던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아름다운 동행>으로 제목을 바꿔 1999년에 개정판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산꾼들이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자일.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는 장비라는 이유도 있지만,

줄에 얽힌 각별한 정 때문에 신주단지 모시듯 다룬니다.

 

산악인이라면 자일을 밟거나 관리를 소홀히 해서 군기 센, 선배로부터

호된 기합을 받았던 추억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등반 중에 자일을 함부로 다루면 선배들의 불호령이 떨어질 정도니,

하물며 자일이 귀했던 시절에는 어떠했을까는 상상이 가고도 남으리라 봅니다.      

 

 


자일 흐름만 보고도 상대방의 등반을 파악

 

산꾼들은 아무나 자일을 함께 묶지는 않습니다.

자일을 묶는다는 행위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은 하루 이틀 만에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며. 야영, 등반 과 같은

산속 생활을 함께, 지내는 동안 서로의 성격과 개성을 파악하고 이해하면서

자연스럽게 신뢰가 쌓이는 것입니다.

 

여기에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연락하고 만나면,

그 관계는 돈독해질 수밖에 없을것 입니다.

 

어느 산악인은 자일 흐름만 보고도 파트너가 지금 무슨 생각과 등반을 하고,

있는지 감이 잡힌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서로의 눈빛만 보고도 뜻이 통하는 경지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을것 입니다.

실제로 각 산악회마다 친형제 이상의 두터운 우애로 서로를 배려하고,

아껴주는 산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자일은 묘한 친화력을 갖고 있으며,

서먹 서먹한 사이라도 한번 자일을 묶고, 등반하고, 나면, 금세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자일을 처음 묶은 사람은 첫사랑처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법.

산악회에 갓 들어온 신입회원들이 처음에는 마음 붙일 곳 없어 겉돌다가도 첫 자일을 묶고 나면,

태도가 달라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산꾼에게 자일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에 대해 이용대(코오롱 등산학교 교장)씨는

“자일은 단순한 물체가 아니다.

 등반자의 정신과 교감하는 생명체로서 영혼을 묶어주는 줄” 이라고 강조하면서

“첫 자일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그래서 처음 구입한 자일은 아무리 낡았어도 평생 간직하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1999년 가셔브룸Ⅰ봉(8068m), 2000년 에베레스트(8850m), 초오유(8201m)를 등정한

변성호(산바우 산악회)씨는 “야영시 자일을 베고 잘 때 느껴지는 촉감과 땀 냄새가 한데 어우러져

포근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자일은 선등자와 후등자를 이어주는 생명의 끈이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면 등반이 불가능하다”면서 “최근 프리 솔로, 하드프리 등반의 영향으로

끈끈한 자일의 정이 퇴색하는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처럼 연습 문제를 푸는 식의 한 피치짜리 등반보다는 길게 피치를 이어가는 등반이

보다 진한 자일의 정을 느낄 수 있지않을까. 나,나름대로 생각해 봅니다! 

 

이에 아시안 X-GAME 대회 3연패를 기록한 이재용(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씨는

“아직까지 벽 등반과 스포츠 클라이밍에서 느끼는 자일의 정은 크게 다를 게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일을 잡으면 자동차 핸들을 잡고 있는 것 같다.

 

앞선 사람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어떤 등반을 하고 있는지

그 느낌이 전달되는 매개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요즘 등반경기 위주로 활동하는 어린 선수들은 과거 선배들이 느꼈던

자일에 대한 정과 의미를 제대로 모른다.

 

그래서 훈련 중에 자일의 상징과 의미에 대해 강조하지만

그들은 하나의 장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기도 했습니다.

 

 


친구가 자일을 끊는 건 이해한다 

 

한편 국내 암장과는 상황과 조건이 전혀 다른 고산에서 느끼는 자일의 정은 어떨까.

1994년안나푸르나(8091m) 남벽, 1995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2000년 K2(8611m) 남남동릉 등정 등

한국 산악계의 난제들을 해결한 박정헌(삼천포산악회)씨는 “국내 암장과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짧은 대답을 한 뒤 “특히 고산에서는 생명을 담보로 자일을 묶는다.

 

자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파트너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이고,

시샤팡마(8046m) 남벽에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러 원정을 떠났습니다.

 

이어 1997년 낭가파르바트(8125m) 이어 2000년 한 해에만 세계 1․2위 고봉 에베레스트와 K2를 등정했던

모상현(청암 산우회)씨는 “자일은 곧 탯줄이다.

 

고산에서는 진짜 믿는 사람하고만 자일을 묶는다.

내가 직접 매듭을 해서 같이 묶자고 자일을 건네줄 수 있는 사람만 믿는다”면서

“새 자일이 있으면 항상 먼저 톱을 선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내가 자일을 직접 검사하는 게 속이 편해서”라고 대답했다.      

 

한편 산에서는 목숨이 오가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산악영화 <버티컬 리미트>의 시작 부분처럼, 자일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최후의 선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등반윤리와 맞물린 이런 미묘한 문제의 정답은 없다.

 

이점에 대해 모상현씨는 “누구도 판단을 못 한다. 하지만 자일을 끊을 수는 있다고 본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끊었다면 이해를 한다”고 조심스럽게 얘기를 했다.

실제로 스스로 자일을 끊어 동료에게 생존의 길을 열어주었던 실화들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다.

 

안데스산맥의 시울라 그란데(6400m) 서벽을 초등하고 하산 중에 친구의 자일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실제 생존기 조 심슨의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나타나는 적나라한

인간 본성의 양면성과 진정한 자일 파트너의 우정을 감동적으로 기록한 명저다.

 

자일은 길이 50~60미터, 직경 9.5~10.5밀리미터에 불과한 물체이지만,,,

여기에는 단순한 산술적인 수치로 끝을 잴 수 없는 산악인의 끝없는 도전 정신과

끈끈한 정이 녹아 있는 영혼의 줄인 것일겁니다.

 

만약 처음 구입한 자일을 어루만지다가 어느 순간 온기를 느꼈다면

그대는 이미 한 산꾼의 듬직한 자일 파트너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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