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산

[스크랩] 하바설산 등정기

히말라야2 2006. 10. 11. 14:32
 

<<이 산행기는 동행한 친구 송봉환이 작성한 글을 퍼 온 것입니다>>

 

합파설산(哈巴雪山 5,396m) 등정기


소재지 : 중국 운남성 여강(中國 云南城 麗江 哈?)

일  시 : 2006.9.30 - 2006.10.8 (8박 9일)

동  행 : 용산고등학교 28회 동기 4명(김성권, 임순만, 이재만, 송봉환) 외 6

여  정 : 인천-곤명-여강-(버스)-합바촌-(도보)-B.C-C1-정상

         (하산에서 귀국은 역으로 이루어짐.)

 



나는 여권에 스탬프가 처음 찍히는 사람이다.

모두들 해외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나는 경험이 없어서 그저 듣기만 해야 했다.

처지가 나와 같은 아내는 가는 도중 배가 고프면 비행기에서 맛있는 것 사먹으라고 용돈을 보태 준다.

 

장비를 챙긴 카고 백을 큰 아들 녀석이 인천공항 가는 리무진 터미널 까지 날라다 주고, 나는 걱정하는 빛이 역력한 아내를 외면하고 획 돌아서 버스에 오른다.

10월 첫째 주 개천절과 추석으로 이어지는 9일간의 연휴 첫날이라 도로사정이 심상치 않다.

 

나를 태운 리무진은 체증을 피해 가느라 뜻밖에도 송추에 계신 아버님의 산소를 앞으로 난 울대고개를 지난다.

다시 한번 먼발치에서 아버지에게 문안하고 예정시간을 조금 넘겨 공항에 도착하는데 만나기로 한 장소에 제일 먼저 도착한 것이다.

 

인천공항은 규모가 큰 데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10명중 5~6명은 골프 가방을 밀고 다닌다.

나는 카트에 카고백을 싣고 로비를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약속장소 근처로 왔을 때 한 여성이 푸른여행사에서 마련해 준 같은 카고백을 갖고 있는 나를 아는 척하며 오라고 손짓한다.

 

수원에서 온 철도청 산악회 소속의 여성 회원이다. 같이 8박9일을 같이 지내야 하기 때문인지 금방 친숙함이 든다.

하나 둘 함께 산행할 일행들이 모인다.

고교 동기들도 나와 우리의 산행을 걱정해 주고 성공을 기원하며 공항 한식당에서 맥주로 건배를 한다.

 

우리 4명과 쟁쟁한 산행 경험을 가진 다른 5명 그리고 여행사 대표 이렇게 10명은 9월 30일 21:15분 인천발 곤명행 MU2004 동방항공을 타고 남서쪽의 하바설산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10월1일 새벽 1시30분(중국 현지시간은 12시30분, 이하 한국 시간으로 표기) 곤명.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졸린 눈의 이방인을 맞이하는 환영객은 새벽 참거리를 기다리던 극성스런 모기들이다.

 

우리의 오늘 숙소는 곤명시내 4성급 호텔인 SAKURA HOTEL KUNMING(昆明櫻花酒店)이고 깨끗한 침구와 단정한 비품의 정리가 눈에 띠는 것 외엔 특색 없는 호텔이다. (그렇지만 베이스 캠프에 머무는 동안 이곳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내일은 아침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여강(麗江)으로 다시 버스를 4시간여 타고 합바촌까지 가야하기 때문에 새벽 6시에는 일어나야 하지만 이국의 첫날밤을 한잔 술 없이 잠들 수 없었는지 짐도 풀지 않고 거리 주점으로 몰려나가 맥주와 고량주로 처음 낯선 음식을 대한다.

 

03시 취침하여 06시 모닝콜에 일어난다.

서둘러 공항으로 나갔지만 연휴로 북새통인 곤명 국내선 터미널에서 우리는 2분 늦었다는 이유로 예정된 비행기를 타지 못한다.

결국 저녁 19:30분 비행기를 예약하고 짐은 공항 보관소에 맡기고 일정을 재조정한다.

 

오늘 낮에 합바촌에 도착하는 일정이 내일 새벽 도착으로 늦어진 것이다.

저녁 비행기를 탈 때까지 남은 긴 시간을 석림(石林)관광을 하기로 한다.

공항을 나와 버스로 시내를 통과하여 약 3시간 가까이 달리면 기묘한 형상의 바위가 숲을 이룬 석림에 도착한다.

 

이 지역은 구향동굴(九鄕洞窟)지역과 함께 소수민족 이족(彛族)이 집단을 이루고 있으며 낙후했던 그들의 경제에 큰 도움을 주는 관광지역이라고 한다.

곤명시내는 무척 번화한 거리다. 또 적어도 보기에 무질서 하다.

교통신호가 바뀌어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오는 차량 때문에 신호를 받은 차는 교차로에 진입을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화를 내거나 경음기를 누르거나 하지도 않는다. 모두가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전거, 말, 소, 오토바이, 트럭, 버스, 승용차 모두가 뒤엉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잘 달린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팜플릿를 참고하여 우리가 머무른 운남성의 인문지리에 대하여 간략히 소개한다.

 

운남성(云南省)은 면적이 38만여㎢ 이고 인구는 약 5,000만 명으로 동쪽으로는 귀주성과 접해있고 남쪽은 베트남, 라오스와 국경을 이루고 있으며 서남쪽과 서쪽은 버마와, 그리고 서북쪽은 서장자치구와 북쪽은 사천성과 접해있고 5개의 시, 3개의지구, 8개 자치구로 구성 되어 있으며, 기후는 아열대기후에 속하지만 열대고원형, 습윤계절풍 기후에 속한다.

 

운남성은 전체인구의 30%가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져있고 장족,타이족,이족,백족,하니족,묘족,나시족등 각각의 25개 소수민족들이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며 살고 있고 약 170만년 전 원시인 석화도 발견되어 인류 발원지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성도인 곤명은 해발 1,895m에 위치하면서 24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古都)로서 사계절 내내 봄같이 온화하여, 꽃이 피고 산이 푸르러 “춘성”(春城)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고 예로부터 중국의 풍류객들이 이 지역을 여행 하는 것을 최고의 꿈으로 여겼다고 한다.

 

우리는 천년고도 여강(麗江)을 거쳐 서북쪽의 서장자치구 방향의 설산을 찾아가는 길이며, 그 길은 중전(中甸), 샹그릴라(香格里拉)를 거쳐 실크로드에 닿아있고 주변은 합파설산을 비롯해 옥룡설산, 매리설산, 백마설산의 고봉들이 늘어서 있고 티벳에서 시작한 물길은 주변 설산의 물을 보태어 세계에서 가장 깊고 험하다는 협곡을 만들어 절경을 이루고 있는 오지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다.

 

석림에서 돌아와 19:30분 국내선 비행기로 여강으로 간다.

국내선은 조그만 비행기로 기장은 우리가 올라탄 것도 모르고 비즈니스 석에서 신발을 벗고 두 다리 쭈욱 뻗고 자다가 부스스 한 눈으로 잠이 깬다. (잴 믿고 갈 수 있을까 ?!)

 

약 40분간의 비행 중에는 캔 음료가 하나씩 주어진다.

하늘에서 본 여강의 야경은 아름답다. 공항 대합실은 우리의 지방 시외버스 터미널 같은 분위기다.

여기서 우리는 또다시 미리 준비된 버스로 4시간여를 달려 합바촌으로 가야 한다.

19인승이라는데 짐이 6석을 차지하고 보니 우리일행과 장거리 야간운전에 대비한 보조기사만 타고 나머지 Staff는 다른 차를 이용해 이동한다.

 

약간의 돈을 추렴해 여강초시(麗江超市-이곳에서는 수퍼마?R을 ‘超市’라고 한다)에서 술과 안주를 준비한다.

장거리 운행 중에 마실 것들이다.

그 동안 나는 광장에서 펼쳐지는 나시족 전통 음악에 맞춰 펼쳐진 한바탕 춤판에 끼어들어 잠시 몸을 풀어 본다.

 

독한 고량주 석 잔을 거푸 마시고 잠을 청하지만 이국의 풍광에 잠이 들지 못한다.

덜컹거리고 위험천만한 길이지만 언제 다시 달릴 수 있을까. 잠을 잘 수가 없다.

길 가의 가로수는 하얀 회칠을 해놓아 헤드라이트 불빛을 받으면 가드레일처럼 보이고 끝없이 이어진 어둠의 터널 속으로 한 줄기 불빛을 앞세워 파고든다.

한참을 올라가던 버스가 멈춘 곳은 해발 2,530m이고 바퀴의 축 부분에 불을 뿌려 열을 식힌다.

 

기압 차이로 간식으로 준비한 쵸코바의 포장이 터질 듯 팽팽해진다.

내 허파도 이렇게 되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차는 달리고 1,700m 까지 한참을 내려간다.

밤에 지난 여강(麗江)과 호도협(虎跳峽)은 베이스캠프에 있는 동안 계속 마을을 설레게 했고, 등정 후 돌아오는 길에 천길처럼 깊고 천리처럼 긴 호도협과 여강을 한껏 볼 수 있었다.

 

해발 2,400m 산악지대에 있으며 나시족(納西族) 문화의 중심,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354개의 크고 작은 다리,

옥룡설산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물이 고성 곳곳으로 흐르면서 길마다 수로와 다리가 있어 “동방베니스” 라는 이름을 얻은 곳,

 

사방위(四防衛, 스팡지에)를 중심으로 164개 방사상의 골목길이 있고 바닥에 돌을 깔아 한껏 고풍스운 멋을 부린 곳,

성장이 멈춘 고도-천년 전의 모습 그대로 시간을 지키고 살아온 땅,

모계사회 중심으로 살아오며 세계 유일한 그들만의 상형문자인 동파경(東巴經), 동파회화, 동파음악과 전통춤 등으로 동파문화(東巴文化)를 이룬 곳.

 

여강고성에 대한 정리다.


하루를 묵을 합바촌에 도착한 시간은 10월 2일 01:25분이고 어둠속에 잠긴 낯 설은 해발 2,560m의 고지이다.

돼지 목 따는 소리, 닭 우는 소리에 잠이 엷어지고 부스럭거리며 일어나 마을을 돌아본다.(07:00)

소리 지르던 돼지는 벌써 뜨거운 물로 사우나 마치고 면도 중이고 길에는 말 배설물 천지다.

 

합바촌은 약 2,500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집은 길 좌우로 띠엄띠엄 지어진 가촌(街村)과 산록에 집단을 이루고 지어져 있다.

대부분 붉은 벽돌로 지어졌으며 우리의 새마을 운동 때처럼 벽에 갖가지 격문(檄文)을 써 놓았다.

 

식당의 벽에는 ‘운남성 2006 삼림방화 명령’이라는 담화문이 붙어있는데 내용이 구체적이고 삼림을 훼손하면 엄벌로 다스린다는 내용의 벽보다.

이곳에는 작은 상점과 소학교도 있는 것으로 봐서 마을의 중심이 되는 곳인 것 같다.

내가 아침반찬으로 김치찌개를 끓인다. 조선족 쿡이 있지만 김치찌개를 할 줄 모른다하여 내가 시범을 보인 것이다. (08:00)

 

짐을 실은 말을 앞세우고 4,060m의 베이스캠프를 향한 산행이 시작된다. (2006. 10. 2, 09:00)

베이스캠프까지는 급경사와 완경사, 넓은 초지와 삼림지대가 번갈아 나타나는 목장지대의 연속이고, 소치라, 대치라를 거쳐 베이스캠프에 이르게 되는데 베이스캠프도 그들이 사용하던 목장지대인 것 같다.

 

가끔 소들이 텐트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하며 도처에 그들의 배설물로 범벅이다.

산행초반부터 단속적으로 내리기 시작한 비는 산행을 힘들게 한다.

고소 적응을 위해 최대한 천천히 걷는다. 적어도 베이스캠프에 도착하기 까지는 고소에 잘 적응하였다.



베이스에 도착하고 텐트 속에서 짐정리 위해 무거운 카고백을 들어올리면서 결정타를 맞는다.

머릿속이 맑지 못한 정도였는데 순간 극심한 두통이 오면서 어지럽기까지 하다. 이후부터는 괴로움의 연속이다.

밤새 극심한 두통으로 앓았으며 악몽에 시달렸다.

 

내가 정상에 설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면 텐트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더욱 내 가슴을 심란하게 만든다.

참으로 길고 괴로운 밤을 보냈다.

임순만은 뜨거운 물을 날진통에 담고 보온커버를 씌워 침낭 속으로 밀어 넣어 준다.

발바닥에 전해오는 따뜻함에 잠시 깊은 잠에 빠져 들 수 있었다.

 

10월 3일

오늘은 고소 적응을 위한 준비일이다. 일정이 비어있다.

나는 이날을 최대한 이용해 컨디션을 찾아야 한다.

준비했지만 먹지 않고 버티던 ‘다이아막스’ 와 ‘타이레놀’ 한 알씩을 아침에 먹었다.

그리고 5리터 이상의 물을 하루 동안 마셔댔다.

속이 미식거릴 정도였지만 소변양이 많아졌다.

 

힘든 일은 하지 않았다.

캠프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컨디션 조절에 모든 신경을 썼다.

점차 나아지는 것 같다. 가끔 머리를 흔들어 아픈 정도를 스스로 체크해 보았다. 조금만 더 나으면 내일 아침 출발에 큰 지장이 없을 것 같다. 저녁엔 만년설이 녹아 폭포를 이루는 곳까지 걸어가 보기도 했다.

 

날씨는 변화무쌍하여 비와 구름과 태양이 번갈아 나타나는 종잡을 수 없는 날씨다.

그런 중에도 잠시 나타난 무지개가 모든 이의 표정을 밝게 한다.

이런 날씨는 우리가 베이스캠프를 떠나 여강으로 오는 날 까지 계속된다.

 

10월4일 04시는 우리가 정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로 한 시간이다.

03시 일어나 누룽지를 끓이고 된장국으로 아침을 먹는다.

약간의 행동식과 컵라면 한 개씩의 중식이 각자에게 주어졌다.

정상 등정 후 캠프까지 철수하는 소요시간을 약 14시간으로 잡고 도중에 캠프1 설치를 하지 않고 바로 정상 공격을 하기로 한다.

 

하루에 1,336m를 올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 고소에 주의하여야 한다.

04:22분 출발이다

한 걸음 한걸음이 신중하다.

 

‘게으른 놈이 정상에 선다.’는 말을 마음속으로 새긴다.

베이스캠프에서 보던 커다란 암벽을 기어오르면 너덜지대가 한참동안 이어진다.

5:12분 캠프1지대로 이어지는 큰 계곡을 트래버스 하는 지점에 도착한다.(4,222m)

출발할 때 검은 구름사이로 간혹 보이던 별은 사라지고 짙은 구름에 갇혀있고 춥지 않지만 비가 계속 내린다. 고어텍스 우의를 여민다.

 

06:48 능선길이고 바람이 강하게 부는 4,608m지점에 이른다.

체온 유지를 위해 고소모를 꺼내어 쓴다.

07:11  4,767m을 통과하고

08:05  캠프1지점을 통과한다. 이 곳에는 10여동의 텐트가 있고 계속 눈이 내려 텐트를 덮고 있다.



10:43  5,000m, 만년설 설선이 시작된다.

아이젠과 스페츠를 착용한다.

눈이 계속내리고 급경사 설사면이 시작된다.

경사는 용평 스키장의 최고 난이도 수준이다.

 

한참을 힘들여 걷고 GPS를 살피면 겨우 10m 정도 진행했을 뿐이다.

이러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이상한 일이다. 머릿속이 맑아졌다. 수직 높이와 비례해서 고소 증상이 심해져야 하는데 기이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머릿속은 맑아졌지만 GPS 수치를 이용해 간단한 삼각함수로 구해내는 거리계산이 되지 않는다.

11:53 5,356m에 도착한다. 경사가 약간 누그러진다.

12:11 5,396m 정상에 선다. 나무말뚝에 빨간 글씨로 합파설산(哈巴雪山, 5,396米)이라 씌어있다.





정상의 왼쪽은 커니스로 형성된 절벽이고 오른쪽은 다소 완만한 설사면이다.

정상에서 우리는 가져간 깃발을 앞세워 사진을 찍고 잠시 머무른다.

내가 정상에 섰다.

절벽 가까이 가서 무릎을 꿇고 양팔을 벌려 사진을 찍는다.

 

봄부터 세운 계획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다.

다시 베이스캠프로 가야한다. 마음은 홀가분하다.

힘들여 올라오던 급경사 설사면은 내려 갈 때도 위험하다.

몸의 균형을 잃으면 바로 넘어지며 한없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제동을 할 수 가없다.

 

베이스캠프에서 보이던 큰 암릉에 다다랐을 때 세 명의 셀파가 밧줄을 들고 산으로 올라간다.

의아하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즐거운 마음으로 베이스에 도착(15:31) 사진을 기록으로 남긴다.

11시간 9분이 소요되었다.

 

이번 산행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아직도 고산은 나에게 멀리 있을 뿐이다.

내려오기 위해 산에 오른다지만 내려오기가 더욱 어려운 산행이었다.

단지 산에만 오른 것이 아니라 계획했던 것처럼 새로운 풍물을 접하는 기회도 되었다.

 

같이한 동기와 함께한 일행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인천공항에서 내가 그와 일행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보고 과일을 건네주던 그녀의 영혼은 아직도 설산에..

출처 : 설벽산악회
글쓴이 : 히말라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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