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타

강정국님의 매킨리 등반 일기(펌)

히말라야2 2006. 7. 30. 13:52
 5월13일(1일차)

  인천국제공항에서 동문들의 배웅으로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나누고 대원 3명이 함께     11시 NW항공을 타고 나리타와 시애틀을 경유하여 앵커리지에 도착하니 오갑복선배님이    미니밴을 타고 먼저 알아보시고 우리는 서로 조웅하여 앵커리지 시내에 있는 VIP영빈관    식당으로 이동하여 김치찌개와 은대구으로 저녁식사를 마친 후 동양식품에 들러 산행에     필요한 먹거리등을 구입하여 와실라산장으로 이동. 이곳은 백야현상으로 자정이 되어서도    어두워지지 않는 곳으로 산장 앞 호수에 비친 멀리 만년설의 잔설이 여전히 기운이 넘치    고 있음.
  
# 5월14일

  어제 긴 여행의 피로도 잊고 우리는 9시 기상하여 성원이형이 미리 해 놓은 된장을 푼 아욱국에 압력밥솥으로 찰진 밥으로 아침 식사를 한 후 근처 Fred Meyer 마켓에 들러 어제 미처 준비하지 못한 먹거리를 구입한 후 와실라 산장으로 돌아와서 등반에 필요한 장비를 마루에 펼처 놓은 후 필요한 장비를 체크하면서 짐 팻킹을 한 후 오갑복 선배님이 사 주신 피자로 점심을 대신한 후 와실라호수를 한바퀴를 돌아보았다. 모든 집들은 우리의 산장과도 같은 규모였고, 사람들은 저마다 파티를 즐기고 있는 듯 동네는 한산하였다. 와실라호수는 주말의 여유를 즐기려는 듯 호수에서 보트를 타고 물살을 가르며 때 이른 여름을 즐기고 있는 사람과 아이와 개를 데리고 호수를 산책하는 사람, 한 쪽에서는 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이 곳 미국사람들은 주말을 보내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 같으며 레저 캠핑 이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하다. 한국은 지자체 선거운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텐데...
오갑복선배님은 이곳 사람들도 조용한 듯 싶으면서 미국을 이끄는 힘은 “silence majority"가 있어 모든 것이 무질서하지만 그 속에 조용한 다수가 있어 가능하다고 한다. 한국을 떠난 지 2일이 지났지만 서울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어진다. 하지만 내일부터 펼쳐질 맥킨리봉의 파노라마와 등정을 위한 몸부림으로 보고싶은 것들을 잠시 잊은 채 등반에 열중해야 겠다.

미국은 5월30일부터 9월말까지 여름휴가 시즌이라고 한다. 이 곳 알래스카는 4개월의 수입으로 1년을 보낸다고 하니 가히 관광및 레저가 어느 정도 발달하였는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곳 와실라 호수의 안내문에는 우리와는 달리 수영금지가 아니라 수영은 해도 좋으나 안전요원이 없으니 자기 목숨은 자기가 책임진다는 미국식 개인주의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5월14일 오늘은 유달리 꽃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물어보니 오늘이 “어머니의 날”이라고 한다.

# 5월15일

오전10시 출발하기로 한 일정은 기상조건의 악화로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것이 우리들의 처음 기다림이다. 아침은 간단히 어제 먹다 남은 닭죽과 깍두기 장조림과 멸치볶음으로 해결하고 기다리고 있을 즈음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허드슨항공사의 비행기가 이륙한다는 소식에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미니밴에 몸을 실었다. 미니밴은 알래스카의 광활한 침엽수림과 아직 잔설이 남아 있는 호수의 늪을 지나 40여분을 달린 후 인디안구역으로 들어서고 성원이형의 간절함으로 롯지산장에서 볼일을 해결한 후 전망대에 펼쳐진 저 멀리 맥킨리 산군을 확인하였다. 아직 채 구름이 가시지 않아 맥킨리봉은 확인할 수 없었다. 우리 일행은 탈키트나의 레인저사무실에서 30여분동안 등반에 필요한 교육을 마친 후 CMC(똥통)2개를 받아서 탈키트나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오갑복선배님은 공항 근처 고 고상돈, 이일교님등 한국인의 묘비가 있다고 하여 우리는 등반을 마치고 내려온 후 참배하기로 하였다.  

새스나경비행기의 낡고 초라함으로 과연 이 비행기가 뜰 것인가 의문이 제기되고 저 비행기에 어떻게 우리 일행이 다 탈 것인가에 대한 걱정으로 가슴을 조리고 있는 동안 끊임없이 경비행기는 뜨고 내림을 반복하고 있었다. 오후3시가 다 되어서야 경비행기에 올랐고 경비행기는 맥킨리산군의 위엄을 가로질러 광활한 침엽수림과 빙하가 깍아 내린 절벽 사이로 유유히 오름을 계속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침엽수림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만년설의 빙하지대는 우리의 착륙지점을 발견한 듯 하늘을 선회한 후 꽃 눈보라를 일으키며 착륙하였다. 랜딩포인트에서 바라본 헌터봉과 포레이커봉은 만년설의 힘겨운 무게를 이고 있으며 끊임없는 눈사태와 바람이 계곡을 깎아 놓아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 앞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크레바스와 블랙홀이 우리에게 손짓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상주하는 레인저는 우리를 반기는 듯 인사를 건넨 후 썰매와 연료 3통을 우리에게 건네주고 “GOOD LUCKY"을 기원하며 또 다른 비행기를 마중하러 갔다.

우리는 먼저 텐트를 설치한 후 썰매의 결속끈을 만들고 내일 운행에 필요한 시뮬레이션을 완료한 후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쳤다. 각자 주어진 임무와 역할을 배분하지는 않았지만 서로가 먼저 각자의 역할을 소화하였고, 등반을 마치고 내려와서 먹을 식량을 CACHE하였다.

여전히 이곳은 해가 지지 않아 우리는 CMC똥통을 가지고 우리의 전통놀이인 투호를 하기로 하였고 결국 놀이에서 진 나는 커피를 끓이기로 하였다.
자정을 넘긴 12시30분 내일부터 있을 등반을 위해 아직 해가 넘어가지도 않았지만 우리 일행은 잠을 청했다.

# 5월16일

랜딩포인트 11시 출발하여  CAMP1 16시40분 도착 (고도차 :  285M)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여전히 해는 밝게 빛나고 있었고 오늘 좋은 날씨로 인하여 SUMMIT을 한 팀들이 있겠구나 생각하였고 여전히 시계는 06시를 가리키고 있지만 어제 저녁 잘 때와 해는 동일하게 맥킨리산군을 비추고 있었으며 밤낮의 구분이 없다. 어제 투호에 진 내가 아침식사를 준비하였고 아침을 마친 후 CMC캔에 볼일을 해결하는 일만 남았다. 내가 먼저 CMC캔을 들고 볼일을 볼 수 있는 변기텐트에 가서 시원하게 볼일을 해결한 후 성원이 형이 2번째로 성공하였다.(이동구선생님은 결국 몸안에 계속 담고 계셨음.)성원이형은  변기텐트가 "MADE IN KOREA"라고 적혀 있다며 좋아한다. 우리는 CMC캔을 CACHE한 후 11시가 다 되어서야 운행을 시작하였고 동계 교육과정에 잠시 끌어본 썰매의 경험으로 썰매의 끈 중간에 고무스트링을 연결하여 탁탁 걸리는 느낌을 상쇄하기로 하였다. 하늘위의 해는 이글거리고 바닥의 눈에서 반사되는 빛으로 쉽지 않은 운행이였지만 운행중 우리는 하나하나 벗기 시작하였다. 결국 우리는 속 내의 차림으로 운행을 하였고 광활한 플라토의 빙하지대로 한발한발 내딧기 시작하였으며 시간과 거리의 개념을 상실한 채 묵묵히 땅만 바라보고 걷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C1에 다른 등반팀은 C2로 향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우리의 일정대로 야영하기로 결정하였다. 운행중 6시간 동안의 무아지경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하였고 어느 곳이 하늘이고 어느 곳이 땅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희고 파란 하늘이였으며 잠시의 고글을 벗는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광활한 빙하의 한 복판에 우리의 텐트만이 우리에게 그늘과 안식처를 제공해 준다.

# 5월17일

CAMP1에서 9시 30분 출발하여  CAMP2 15시 도착 (고도차 : 565M)
07시 기상하여 식사를 한 후 09시30분부터 운행을 시작하였고 시작부터 내린 눈이 C2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내림. 하늘과 땅이 구분 안될 정도로 계속해서 눈이 내렸고 우리가 어느 길로 걸어왔는지 구분이 안됨. 저 멀리 빙하에 몇 팀이 운행하고 있는 것이 보이지만 계속해서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됨. 우리의 운행이 오르고 있는 건지 아니면 평지를 걷는 건지 착각이 들 정도로 광활한 빙하지대의 한 점으로 보이고, 랜딩포인트에서 운행을 함께 한 독일한 부부(자기들은 친구라고 함.)와 함께 C2에서 야영을 함. 우리의 운행속도는 느리고 우리 뒤에 등반팀이 없는 것을 알고 마음이 조급해짐.

아직 별다른 고소증세로 머리가 아프지는 않았지만 저녁에 먹은 소주 1병이 밤새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 하였고 넉넉하게 챙겨온 담배만이 우리의 외로움과 갈증을 달래주었음.

저녁에 우리는 안심스테이크와 계란 후라이 간고등어 우거지국 누룽지 핫 초코등으로 저녁을 해결하였음.


# 5월18일

CAMP2에서 10시 출발하여 CAMP3에 16시에 도착 (고도차 : 530M)
아침은 우거지국, 밤새 소리 없이 내린 눈이 독일부부의 텐트와 우리 텐트만이 이곳이 야영지임을 알려주고 있으며 다른 텐트는 보이지 않음. 시작부터 SKI HILL 오르막이다. 며칠간의 다져진 경험으로 수월하게 SKI HILL을 오른다. 외국 등반팀은 썰매의 스토퍼 덕분으로 썰매가 뒤로 밀리지 않고, 스키를 신고 무난히 SKI HILL를 오르고 내려온다. 스키를 배워둘 걸 이동구선생님은 스키를 가져오지 않은 걸 후회하신다. 결국 내가 스키를 한 번도 신어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썰피로 대신하였지만 나도 스키를 배워둘 걸 쩝. SKI HILL의 계속되는 오르막으로 가도가도 평지가 나오지 않는다. 밤새 내린 눈으로 크러스트가 되지 않은 신설은 썰피를 신고 오르기도 쉽지 않다. C3에 도착하니 해가 보이기 시작한다. 하늘에서 계속해서 은비늘이 내리기 시작하며 약간의 두통증세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배가 아프기 시작한다. 배가 아픈 통증이 고소증세라는 것을 내려와서 알았음. C3에 도착하여 육개장(당면 건버섯, 계란)과 김치 멸치 볶음.


# 5월19일

CAMP3 10시 출발하여 17시30분  CAMP3 도착 (4,300M에 CACHE :윈디코너)
아침 출발부터 배가 아프다. 저녁의 머리가 아픈 것은 자고 일어 나니 개운하였는데 배가 아파서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러다 그냥 내려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엄습한다. 가져간 정로환과 소화제 다이아목스, 비타민등 이것저것을 먹어본다. 여전히 배를 조여오는 통증과 기분나쁨은 가시지를 않는다. 성원이형과 동구형의 걱정에 조금의 게으름을 피워보지만 부지런한 성원이형은 묵묵히 아침을 하고 윈디코너에 데포시킬 짐을 챙기느라 분주하다.  C3에서부터 가파른 오르막이다. 외국팀은 스키를 타고 오르지만 우리는 썰피와 배낭에 짐을 싣고 윈디코너로 오른다. 약500M의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니 오른쪽으로 또 오르막이 나타난다. 윈디코너에 갈수록 바람은 상상을 초월한다. 기온은 낮지 않지만 바람이 워낙 강해서 우리의 진행을 방해한다. 다른 등반팀도 오른다. 도저히 배낭안의 간식을 풀고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허기진 배와 뼈속까지 파고드는 바람에 기운이 남아 있지 않지만 윈디코너의 명칭은 정말 잘 지었다라는 생각이 든다. 윈디코너에 데포하고 돌아오는 2시간 동안  여전히 배는 아프고 성원이형이 먼저 내려가서 따뜻한 물에 차를 한 잔 끓여준다.

크레바스와 낙석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윈디코너의 오른쪽 설사면을 따라 운행하면서 레인저의 설명은 스릴있고 낭만있는 곳이라는 설명이 생각날 정도다. 내일 다시 이 곳을 썰매를 끌고 운행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배가 아프다. 내일이면 드디어 데날리시티의 입성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배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전히 하늘은 파랗고 대지는 눈으로 가득하다.

매일같이 똑같이 반복되는 생활속에서 유치하지만 재미있는 놀이를 찾는다. 오늘은 계란찜을 별미로 먹었다. 이동구선생님은 매듭 풀기의 대가다. 우리가 서울에서 준비한 젓갈 봉지의 끝 부분을 아무 생각없이 묶었지만 모든 봉지의 매듭을 다 풀어낸다. 정말 대단하시다. 우리 같으면 가위로 잘라 버릴텐테... 성원이형은 엄청 부지런하다.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밥하고 눈치우고 눈블럭 만들고 사이트를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고 정말이지 귀찮을 정도로 부지런하다. 이것도 성원이형 아버님에 비하면 일에 꿀을 발라 놓으면 꿀만 핥을 놈이라고 혼이 난단다. 나는 성원이형이 하니 마지 못해 하지만 나보고는 들어가서 쉬라고 한다. 그렇다고 쉴 수도 없는 노릇. 성원이형 따라서 그냥 한다. 이렇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사람이 맥킨리의 정상을 향향 한걸음 한걸음 조금씩 걸음을 옮긴다.
오늘은 4,300M까지 올렸고 우리는 자축이라도 하듯 가져간 담배를 피웠다. CRAZY BOY

# 5월20일      

CAMP3에서 12시에 출발하여 데날리시티에 23시30분에 도착 ( 고도차 :1,000M)
C3에서 12시에 출발하여 4,300M데포시켜 놓은 곳을 지나 데날리시티에 도착하니 시계는 벌써 23시30분을 가르키고 있다. 기압은 584로 떨어졌고 바람이 워낙 강하여 텐트치기가 어렵다. 성원이형과 내가 캠프사이트를 찾는 것도 힘이 들도 다리에 힘이 빠지고 열발 이상 걷기가 쉽지 않다. 결국 텐트를 치다가 폴이 부러진다. 임시방편으로 조치를 한후 우리는 텐트 주변을 정리하다 이동구선생님이 다그치신다. 텐트부터 쳤으면 눈 녹이고 체온을 회복한 후 주변을 정리하라고 하신다. 관록과 경험이 있는 한마디다. 우리는 텐트 안으로 들어가서 눈을 녹이고 커피한잔으로 언 몸을 녹이고 주변을 정리한다.
데날리시티에서 바라본 주변은 앞으로 헤드월의 설벽과 오른쪽의 웨스트립 이것을 이어주는 웨스트버트레스의 리지능성이 있고, 뒤쪽으로 레인저텐트와 메디컬텐트 왼쪽의 헌터봉, 오른쪽 포레이커봉이 버티고 서 있으며 그 앞에 지상에서 가장 높은 화장실 두 개가 저마다의 봉우리를 마주보고 서 있다.
데날리시티는 이름만큼이나 수십동의 텐트가 쳐 있고 각국의 젊은 남녀들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듯 웃고 있다.

머리가 아프지는 않았지만 기분 나쁜 복통은 계속되었고 몸에 기운이 남아 있지 않다.  

# 5월21일

어제의 늦은 도착으로 별도의 기상시간을 정하지 않고 정오까지 잠을 청했다. 식사 후 무기력함으로 잠이 들어 16시까지 잠을 자고 윈디코너에 데포시켜 놓은 짐을 찾으러 갔다. 그러나 공부하기 싫은 아이 공부하라고 하면 배가 아픈 것처럼 아무 이상이 없다가도 운행하자고 하면 배가 아프다. 16시30분에 4,300M에 데포시켜 놓은 짐을 찾고 데날리시티로 돌아오는데 19시가 다 되었다. 내일의 기상상황과 루트확인을 위해 레인저 사무실에 들러 확인하는데 레인저 하나가 우리보고 아가씨라고 한다. 깜짝 놀라 물어보니 아가씨와 아저씨를 혼동하고 있으며 자기가 88년에 송탄에서 주한미군으로 근무하였다. 별개 다 반갑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오랜만에 가져온 김치로 찌개를 끓여 먹었다.  텐트앞에서 보이는 헤드월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헤드월을 오르는데 보통 3시간-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마지막 500M구간은 고정로프 설치구간으로 주마링을 해야 한다고 한다. 데날리 등반에 가장 난이도 있고 체력이 요하는 구간이라고 한다.

# 5월22일

아침 10시 기상하여 우리는 오늘을 휴식일로 정하였다. 그래도 텐트안에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 움직여야 한다며 헤드월의 상단까지만 등반하기로 하였다. 고도에 의한 호흡이 가쁜 것도 있지만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CACHE할 일부의 짐을 우리가 명명한 오아시스 상단에 CACHE한 후 내려왔다. 프르지크매듭으로 고정로프를 오르려고 생각도 하였지만 미쳐 준비하지 못한 주마(어센더)가 없어 휴식일에도 많은 것을 했다고 자축하며 내려가기로 하였다. 헤드월을 등반하는 동안 3개의 크레바스가 있지만 그리 위험해 보이지는 않으며 표시기로 표시해 놓았기 때문에 궂이 그 쪽으로 가지 않으면 위험하지는 않다. 우리는 캠프에 내려와서 2가지 안에 대해서 결정하기로 하였다.
1안은 오아시스에 데포시켜 놓은 짐을 가지고 C5에 가서 정상 공격
2안은 오아시스에 데포시켜 놓은 짐을 C5에 올리고 내려 와서 다시 정상 공격
결국 우리는 1안을 선택하기로 하고 24일 C5설치 25일 정상 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우리 셋중 누가 얼마나 많은 덕을 쌓았는지 기상상태를 다시 한번 점검하자고 하였다.

# 5월23일

오늘은 휴식일 날씨 청명함. 멀리 알래스카 산맥과 울창한 침엽수림이 보임. 수저 3개와 포크를 가지고 윷놀이 함. 이동구선생님이 져서 내려가서 맛있는 SEAFOOD사기로 함. 벌써 4일째 데날리시티에 머물고 있음.

# 5월24일

예정대로  C5설치하기로 함. 7시 기상하여 10시 출발 헤드월 오르는 등반팀 우리 3인과 바우산악회 김용석선배 외 이란팀 2명을 제외한 등반팀은 없음. 바람이 심하여 헤드월 정상부근 15시 도착, 바람이 강하여 도저히 진행이 되지 않음. 오아시스에 데포시켜 놓은 짐을 다시 정상부근에 데포시키기로 하고 하산하기로 결정함. 답답함과 걱정이 엄습. 데날리시티에서 CRAZY WIND 부는데 왜 올라갔냐고 우리보고 대단하다고 함. 우리는 이렇게 바람이 강한 줄 몰랐는데...   70MPH면 어느 정도 바람인지....  결국 우리는 전날 비축한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헤드월을 올랐는데 정상부에서 전진하지 못하고 결국 다운하였으며 체력소모가 큼. 헤드월 벌써 2번째

# 5월25일

하루종일 데날리시티에서 휴식 눈블럭 보수와 라볶이 해먹고 바우산악회(일요다큐 산에서   취재)에서 저녁식사 초대하여 알파미와 된장국으로 저녁 해결, 하루종일 날씨 쾌청하였고   헤드월 오르는 팀들 많이 있음. 어제의 기진맥진으로 우리는 텐트앞에서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음.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 5월26일

오늘이 몇일인지도 모른다. 며칠 째 이 곳에 머문지도 모른다. 초조함이 앞서며 하루 빨리 내려갔으면 좋겠다.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날씨가 청명하다. 그러나 바람은 여전히 강하고 다른 팀들 헤드월을 오른다. 바우산악회 촬영팀 텐트도 없이 C5를 향해 오른다. 바람이 강하여 말리고 싶지만 그들도 전문가들. 어찌할 방법이 없다. 이 곳에서의 생활이 지루하고 답답해진다. 내일이 마지막이다. 다시 한번 간절히 염원한다. 내일은 무조건 고소캠프에 간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으며 4인용 텐트에서의 생활이 힘들다. 서로를 배려하고 애써 웃음짓는 모습들이 보기 좋다. 여전히 기다림이다. 이 끊은 어디인가? 성원이형이 가져온 MP3에서 "내사람“이라는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다. 이제는 체념과 자신과의 타협을 하게 된다. 이 정도면 됐지? 굳지 올라가서 뭐해? 속으로만 생각하고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 각자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올라왔는데 속으로만 삼킨다. 토요일과 일요일 날씨가 좋기만을 기대한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정은 3일 정도의 여유만을 가지고 있다. 텐트안에 널부러져 있는 식량과 먹거리를 보니 우리의 등반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 5월27일

아침에 일어나니 엄청난 바람에 텐트가 운다. 65MPH 도저히 텐트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오늘도 헤드월을 오를 수 없다. 갑자기 설움이 복 받쳐서 눈물이 난다. 텐트의 절반이 눈으로 덮혀 점입가경이다. 며칠 전 만들어 놓은 식탁과 의자는 온데 간데 없고 성원이형과 나는 텐트 밖으로 나가서 폴대가 부러지지 않게 텐트 주위로 쌓인 눈을 치우고 들어 왔다.  갑자기 경기연맹으로 오신 강릉 예술고의 선생님이 한국등반팀이 헌터봉을 등반하다 조난을 당하였는데 자신이 레인저 사무실에서 계속해서 교신을 해주고 계신단다. 갑자기 불안해진다. 해외원정 첫 등반중에 바로 앞에서 이런 소식을 접하니 겁이 난다. 우리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서로를 위안하며 또 하루를 보내고 있다. 오후가 되어서야 2명 모두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저녁에는 바우산악회 일요다튜촬영팀을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했다. 알고 보니 그 중 한명이 성원이형 시골 학교 2년 후배란다. 참 인연이라는 것이 북한산 인수봉에서도 못 만나보았다고 하는데 타국 이 멕킨리에서 후배를 만나다니..... 참으로 대단한 인연이다.

# 5월28일

데날리시티 10시 30분 출발하여 20시 데날리 빌리지 도착
아침에 일어나니 바람이 다소 잦아들었다. 우리는 서로의 결의를 다지고 C5를 향해서 출발하기로 하였다. 헤드월 구간 바람 한점 없음. 그러나 버트레스 구간에서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음. 헤드월을 올라서면 2시간 정도의 리지구간(버트레스)를 지나면 C5. 평소 6시간이면 도착할 거리이지만 우리는 9시30분 소요되었음. C5는 C4보다 1,000M이상 위에 있으며 바람이 강하여 피켈을 들고 다니며, 텐트 주변의 눈블럭이 C4와는 크기부터 다름. C5구간의 바닥눈을 얼마나 많이 벗겨냈는지 표고차가 차이 날 정도로 어마어마 함. C5에서는 왼쪽 사선으로 데날리 패스 구간이 보이며 데날리 패스를 통과하면 오른쪽 설사면으로 3시간 정도 능선을 오르고 풋볼필드를 지나면 데날리 봉이 보임.
드디어 내일이면 데날리 SUMMIT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며 날씨가 좋기만을 기대함.

# 5월29일

어제 우리는 05시 기상하여 늦어도 07시에 출발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07시 기상하여 09시가 다 되어서야 데날리봉을 향해 출발하였고 바우산악회 3인과 동행하기로 하였다. 우리보다 운행속도가 빠른 바우산악회와 열린캠프 동문회가 조율하여 동시에 SUMMIT을 하기로 하였다. 우리 일행은 데날리 패스 구간을 2시간만에 통과하여 좋은 출발을 보였고 잠시의 휴식과 지루함이 이어지는 계속되는 능선을 4시간 동안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잰 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꼭 발꿈치를 대고 걷는 것처럼 우리의 운행속도는 늦었으며 호흡의 가파름과 배낭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는데 배낭이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4시간여 동안 바람과 기온과 체력과 인내를 가지고 능선을 지나가니 저 멀리 데날리 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앞 풋볼필드의 광활함을 지나 데날리봉을 바라보니 그 동안 품어 왔던 격한 감동과 눈물이 고글 밑으로 타고 흐른다. 성원이형은 저것은 데날리봉이 아니라고 우기지만 그래도 가슴 벅찬 감동은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저마다 사진기와 깃발을 가지고 마지막 데날리봉을 오른다. 어디서 밀려왔는지 갑자기 보이지 않는 화이트아웃과 체력소모로 도저히 진행될 수 없었지만 고도계의 6,100M은 우리를 좀 더 앞으로 오르라고 손짓한다. 여기서 1시간 정도만 가면 정상이다. 조금만 참자.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만 힘을 내고 더 가자. 그러나 앞에 가던 성원이 형이 갑자기 다운하란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농담하는 줄 알았다. 성원이형 옆에 가서 보니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란다. 화이트 아웃과 체력소모로 더 이상 진행하면 C5까지 가기 힘이 들어서 안된단다. 여기가 우리의 정상이다. 그만 내려가자고 한다.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그렇게는 안된다고 하였다. 서러움과 복받치는 감정으로 결국 우리는 내려왔고 이렇게 내려가면 안된다. 설동을 파고 야영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 설동을 파고 있었으나 오늘부터 날씨자 나빠진다고 하여 결국 우리는 포기하고 지친 발걸음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C5로 내려왔다.

# 5월30일

C5->C4하산
기상상황 좋지 않음. 어떻게 하산해야 할지 막연함. 서로를 위안하며 텐트를 정리하는 동안 계속해서 눈물은 흐르고 남은 식량을 바우산악회팀에게 나누어 줌. 경기연맹에서 오신 분들은 우리 바로 옆에 텐트를 치고 계셨지만 우리가 내려간다고 인사하였으나 텐트밖에 나와 보지도 않고 안에서 조심해서 잘 내려가라고 함.(조금은 서운함.) 바우산악회 3명과 강릉 예술고 선생님은 마중까지 해 주셨는데....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힘든 발걸음과 기상조건의 악화로 C4까지 내려왔음.

# 5월31일

C4 -> 랜딩포인트
10시 기상하여 텐트 정리하는데 14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텐트가 눈으로 막혀 피켈과 삽으로 텐트를 건지는데 2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어쨌든 랜딩포인트까지 내려가기로 하였는데 텐트의 악조건으로 아침먹은 것이 벌써 소화가 다 되어 남은 식량은 스프 밖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스프로 간단히 요기를 해결하고 썰매에 짐을 실은 후 출발하였다. 하산길에 자꾸 넘어지는 썰매에 화가 나기도 하였고 이동구선생님의 썰매에 줄이 걸리고 내가 썰매 2개 끌고, 성원이형이 뒤에서 잡아 주고 서로가 짜증도 나고 힘도 들었지만 결국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랜딩포인트에 도착하였다. 각 사이트 별로 데포시켜 놓은 짐을 찾고 지친 다리와 허기진 배를 움켜 쥐고 랜딩 포인트에 도착하니 우리가 출발 전 묻어 놓은 삼겹살과 신김치가 있어 두루치기를 해 먹은 뒤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 6월1일

많은 외국 등반팀이 랜딩포인트에서 경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침8시 기상하여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우리는 간신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고 우리가 탈키트나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쯤이였다. 오갑복선배님은 오늘 등반을 준비중인 분을 모시고 왔으며 우리는 우리의 방법을 간단히 알려 준뒤 그 분을 배웅했다. 우리는 함께 탈키트나 옆에 있는 공동묘지에서 고 고상돈, 이일교님의 묘를 참배한 뒤 오갑복선배님과 함께 와실로로 향했다. 외국인은 우리보고 왜 이렇게 얼굴이 까맣냐고 물어보길래 마운틴 맥킨리 등반하였다고 하니 대단하다고 한다. 이 곳 사람들도 맥킨리 등반이 쉬운 것만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 듯 하다.
도착한 와실라에서 오갑복선배님은 힘든 우리를 위로하 듯 우리가 등반장비를 정리하는 동안 바비큐로 멋진 파티를 열어주었고 저녁11시에는 손수 비빔국수를 해주셨다. 비빔국수의 맛 아직도 감동적이다. 내일 우리는 시내 관광을 하기로 하고 새벽3시경에 잠이 들었다.

# 6월2일

9시 기상-> 앵커리지 스타벅스에서 모닝커피 -> 앵커리지 관광안내소 -> 앵커리지에서 보이는 바닷가 산책 -> 한인이 운영하는 데리야끼 식당에서 점심 -> REI매장 -> 철새도래지 -> 멀리 만년설이 보이는 해안가 절벽에서 휴식 -> 앵커리지에서 가장 유명한 SEAFOOD식당에서 이동구선생님이 저녁(윷놀이에서 이동구선생님이 꼴찌) -> 아쉬워서 일본인이 경영하는 “사가야”마켓에서 킹크랩과 과일을 구입한 후 와실라에서 오갑복선배님이 정말 환상적인 킹크랩요리와 찜을 먹음.


P/S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였습니다만 너무 많은 것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정말 잊지 못할 추억과 감동 그리고 아쉬움이였습니다. 아쉬움은 뒤로 하고 즐거움과 감동만 기억하겠습니다.
끝으로 후원해주신 열린캠프 동문 여러분들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드리고 노심초사 우리의 안전한 등반과 편안함을 제공해주신 와실라 산장의 오갑복선배님에게 감사 인사 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