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히말라야
[스크랩] 네팔 싱구출리 등반기
히말라야2
2006. 6. 1. 11:00
싱구출리 등반기
2001. 4. 27.
2001년 4월27일 밤 12시 우리나라의 한 중소 건설업체에서 무상으로 지어준 네팔 유일의 국제공항인 카트만두공항에 도착하니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매케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로얄네팔(RA) 항공기가 약 4시간 여를 연착한 것이다.
셀파인 쳉아를 만나 마르샹디 호텔에 여장을 풀고 2일 동안은 등반에 필요한 행정절차 및 부족한 식량 및 장비를 보충했다.
2001년 4월 30일
카트만두 도착 이틀 후 새벽 6시경 릭샤를 타고 Tourist Bus 터미날로 가는길에 시장은 무척이나 붐볐다.
안나푸르나 산 군을 가기 위해서는 비행기 또는 버스로 네팔 제2의 도시인 포카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중 제법 깨끗해 보이는 버스를 타고 출발하는데 출발 직후 버스가 고장나서 예비차 인지 무지하게 낡은 버스로 갈아타고, 수많은 차가 고장나서 서있고 도로 곳곳이 유실된 왕복 2차선의, 네팔에선 유일한 고속도로(Express way)를 달리는데 갑자기 차가 멈춰 서더니 도저히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중간에 확인해보니 도로에서 오토바이가 어린아이를 치는 교통사고가 있었는데 경찰이 와서 사고 수습이 완료 될 때까지는 양쪽 모두 차량이 통행할 수 없단다.(충분히 옆으로 비켜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 현장에 가보니 아이가 사고직후 넘어진 곳과 오토바이 쓰러진 곳을 나뭇가지와 작은 돌로 표시해 놓고 양 방향의 차를 막고 경찰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거의 4∼5시간이 지난 뒤에야 사고는 수습되고 이후 평균 시속 약 40∼50㎞로 달려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에 도착한 후 미니 밴(다마스와 비슷)을 대절하여 안나푸르나 산 군의 산행 기점인 나야풀에 도착했다.
금년엔 몬순이 일찍 와서 산 위에는 많은 눈이 와서 쌓여있으며, 최근의 날씨가 오후만 되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하더니 트레킹 하는 동안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비가 내리고 급기야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MBC)에 이르러서는 눈으로 바뀌어 계속 내렸다.
트레킹 도중 Hinku Cave(힌쿠 계곡)를 지날 때에는 약 15일전 히운출리에서 눈사태가 일어나서 그 밑을 지나던 트래커 몇 명이 매몰된 후 일부 구조되었으나 이스라엘 여자 2명과 독일 남자 1명의 시신이 발굴되지 않아 이스라엘 여자의 부모가 그 위 계곡에서 호수를 연결하여 계속 물을 뿌려 눈을 녹이며 자녀의 시신을 찾고 있는 장면이 목격되는데, 너무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깝게 만든다.
2001. 5. 3.
캐라반 4일만에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여 오스트리아 등반대를 만났는데 내가 오르려는 산 싱구출리 ABC(전진캠프)에서 등반을 시도하다 눈이 너무 많아 도저히 등반을 할 수가 없어 철수하는 중이라고 한다.
저녁으로 강된장(해외 산행 시 권장할만함)에 고춧가루, 양파, 마늘 등을 다져 넣고 끊여 밥을 비벼 먹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밖에는 계속해서 눈이 퍼붓는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쳉아(셀파)와 클라이밍가이드 참바(다망)와 함께 등반 일정 및 루트에 대하여 회의를 했다.
나는 등반 일정이 충분하니 내일은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다녀오기로 하고 또 그곳에서 정보를 더 수집하기로 했다.
2001. 5. 4.
오늘은 ABC까지만 다녀오면 된다고 생각하고 조금 늦잠을 잤다.
밤새도록 눈이 퍼붓더니 오늘도 역시 하루종일 눈이 내릴 기세다.
간단히 트레킹 준비를 하여 ABC(안나 Base)에 도착하니 다른 등반 팀은 하나도 없이 모두 철수했고 이곳까지 트래킹을 온 몇몇의 트래커들 만이 눈에 띌 뿐이다.
간판에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씌여 있는 한 롯지에서 휴식을 취하며 점심으로 찐 계란 3개 삶은 감자 3개로 점심 식사를 하고 정보를 수집한 후 마차 Base로 돌아왔다.
2001. 5. 5.
다음날인 5월 5일 어린이날 안나푸르나 Base Camp로 다시 올라오니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이 생각나 펜을 들었다.
카트만두에 돌아가서 부치면 서울에는 나보다도 더 늦게 도착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곳에서 지금 이 시간에 보고싶고, 그리운 마음을 내 사랑 하는 아내와 두 아들들에게 전하고 싶어 각자에게 엽서를 한 장씩 썼다.
이제 해발 표고가 4,000m를 넘었으니 고소에 신경 쓰기 위하여 식사도 조심스럽게 잘 챙겨먹기 시작했다.
그 동안 4번째 히말라야 산 군을 찾았지만 김치와 된장을 가지고 온 것은 처음인데 꽤 요긴하게 활용되었다.
모처럼 오후에 맑게 개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마차푸차레, 히운출리, 안나푸르나 1봉,2봉,3봉,4봉과 텐트피크 등 안나푸르나 산 군이 빙 휘둘러 위압감을 주며 펼쳐져 있다.
대자연 히말라야의 파노라마를 담기 위해 카메라의 셔터를 계속 눌러댔다.
내일 High Camp로 올릴 등반장비와 식량을 체크하고 쳉아, 참바와 함께 등반에 따른 의견을 교환했다.
캔맥주를 하나 마시고 잠자리에 누워 앞으로 몇 일간만 날씨가 좋기를 간절히 기원하다 잠이 들었다.
2001. 5. 6.
누릉지와 짜파티, 오므렛으로 아침을 먹은 후 전진캠프를 생략하고 오늘 곧바로 High Camp까지 오르기로 했다.
경사가 너무 심한데다 눈이 많이 쌓여있어 고정로프를 설치했으나 그 무겁고 큰짐을
지고 운행하는 포터들이 걱정이다.
정말이지 여기서는 한번 미끄러지거나 넘어져서 낭떠러지 밑 계곡으로 떨어지면 최하가 사망이다.
만 12시간을 운행한 끝에 High Camp에 도착했는데 다행히 오늘은 온종일 일기가 좋아서 ABC를 생략하고, 하루만에 High Camp로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이다.(너무도 힘든 하루였다)
고소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약 타이레놀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2001. 5. 7.
드디어 정상공격에 나서는 5월 7일, 5시 30분에 눈을 뜨자마자 일기부터 살피니 개스가 꽉 차있다.
오늘은 등반이 힘들겠구나 생각하며 포기하고 아침운동을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엔가 개스가 물러나면서 날씨가 호전될 기미를 보인다.
쳉아와 상의한 끝에 일단 공격을 하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일기가 좋을 때 우선 정상을 공격하고 도중에 상황이 안 좋아지면 자일 등 일부 장비를 중간에 데포 시키고 캠프로 돌아왔다가 내일 다시 공격을 하기로 했다.
라면과 숭늉으로 먹히지 않는 아침 식사를 하고 등반장비를 챙겨서 7시에 정상을 향하여 공격을 시도했다.
일단 등반을 하다가 일기가 급변하면 철수를 하더라도 지금처럼 일기가 좋게 안정돼 있을 때 한번이라고 더 시도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아침에는 눈이 얼어있어 발목정도 까지만 빠져 걷기 좋았으나, 햇볕이 비치면서부터는 지역에 따라 가슴까지 눈에 빠져 쳉아와 참바가 교대로 러셀을 하는데 나는 체력이 걱정되어 함께 러셀을 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오르는 중 정상을 바라보니 정상 밑 커니스가 오버행으로 되어 있으면서 거대한 설벽이 가로막고 있는데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코스로 보인다.
히든 크레바스 지대를 안자일렌을 하고 조심해서 우회하여 통과하고 그 거대한 벽 밑으로 다가가니 높이 약 250m, 경사도는 평균 80도 이상의 설벽 코스이다.
겁에 질려 담배를 한 개비 피워 무는데 클라이밍 가이드인 참바가 크램폰을 착용하고 자일을 묶더니 아이스엑스를 휘두르며 오르기 시작한다.
약 150m를 올라 자일을 고정시킨 후 나보고 올라오라고 소리친다.
나는 쥬마질을 하며 피켈을 찍어가며 대여섯 걸음을 걸으면 너무도 숨이 가빠 가슴이 터질 것 만 같은데, 참바와 쳉아는 힘도 안 드나보다.
가쁜 숨을 고르고 또다시 대여섯 걸음이면 더 이상 전진이 안 된다.
겨우 자일이 고정된 지점에 오르니 쳉아는 쉽게 올라온다.
다시 2번째 피치를 참바가 오르는데 이리저리 살피며 잘도 오른다.
참바가 정상 밑에 다다르더니 약간 오버행진 커니스를 전부 깨낸다.
많은 눈덩이들이 굴러 내려오면서 마구 때린다.
제법 큰 눈덩이를 맞으니 몸 속까지 뻐근하게 아파 온다.
쥬마질을 반복하여 오버행진 곳을 오르니 싱구출리(6,501m) 정상이다.
한참을 업드려 숨을 고르고 있으니 쳉아가 올라오기에 함께 환호성을 지르고 기념촬영을 하고 간식을 먹는 등 약1시간 동안을 정상에서 머물렀다.
정말로 힘든 산행이었다.
처음 시작한 로부제 피크에서부터 얄라피크, 메라피크, 그리고 이번 싱구출리 피크까지 4번째로 히말라야의 정상을 밟는 순간이었다.
High Camp로 돌아오는 길은 눈이 너무 깊이 빠져 고난의 길이었다.
다행인 것은 등반을 시작해서 캠프로 돌아 올 때까지 날씨가 아주 좋았다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경사만 급하다면 구르고 미끄러지며 내려가고픈 심정이다.
무전기로 포터 들에게 정상에서 하산중임을 알리고 해가 다 저물어 가서야 캠프로 도착했다.
당초 포터들은 캠프까지 장비들을 올려다 놓은 후 곧 바로 ABC로 철수할 계획이었으나 처음 올라오던 날 너무 늦게 도착하여 식당텐트에서 잠을 잤고, 다음날도 바로 정상공격을 하는 바람에 우리와 같이 하산하기 위하여 대기하느라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식량이었다.
또한 포터들은 당일 철수할 계획이었기에 침낭뿐 아니라 텐트도 없이 올라왔기에 걱정을 많이 했으나 그들은 식당텐트에서 이틀을 거뜬하게 버텼던 것이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 힘든 산행을 감히 시도나 할 수 있었겠는가 생각하며, 내 파일자켓과 여분의 파일 바지 등을 빌려주어 입고 잘 수 있도록 해주었고, 부족한 식량은 우리가 먹을 식량을 조금씩 나눠서 먹어야만했다.
2001. 5. 8.
ABC로 돌아오는 길 또한 경사가 대단히 급하여 상당히 위험하였으나 모두가 조심하여 무사히 ABC로 철수가 완료되었다.
항상 꿈속에 간직하고 있는 히말라야여!
하나의 산이 완료되는 순간 또 다른 미지의 산을 향한 꿈이 되살아 꿈틀거리는 내 사랑 히말라야여!
내 반드시 다시 찾으리라!
하행 캐라반 중에 포터들과 헤어지는 마음은 왜 이리도 아쉬운지!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히말라야!
마음속에서 다시 한번 고마움을 보낸다.
2001년 5월 11일 저녁
포카라에서..........
출처 : 설벽산악회
글쓴이 : 히말라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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