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산

[스크랩] 엘브러즈(제2부) --- 정상에 서다

히말라야2 2006. 5. 30. 18:20



 

7월 28일(수) 바렐산장 - 파스투코프 록 - 엘부르즈(5,642m) - 바렐산장

 

 

새벽 2시반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화장실 다녀오고, 복장 갖추고 난 후,

아침식사를 위해 전복 죽을 데워 먹어보려 했으나 역시 먹히질 않는다.

수통에 더운물을 채우고 마지막 점검을 한 후 장비를 착용하고 나니

스노우캣이 준비가 됐다는 신호가 온다.

 

새벽 4시 15분에 바렐산장을 출발 정확히 30분이 걸려서 파스투코프 록에 도착한다.

새벽 추위를 이기고 또한 새들에 올라서면 엄청나게 바람이 강해 대비하고자 오바트라우져에

윈드자켓 그리고 우모복 상의를 입고 나서서인지 그다지 춥다는 것을 느끼지는 못한다.

 

특히 날씨가 많이 추우면 이중화를 신었더라도 발가락 끝이 시려 꼼지락거리게 만드는데

그렇게 까지 추운 것은 아닌 것 같다.

28일 새벽 4시 45분 드디어 어둠속을 뚫고 산행 출발 앞뒤로는 수많은 각 국의 산악인들이

한발한발 힘주어 걸으며 정상 쪽으로 향하고 있다.

 

앞으로 먼저 조금 치고 올라가 일행들 사진을 찍어주고 경사가 급하여 지그재그 오르는데

서서히 힘이 들기 시작한다.

조금 걸으니 동쪽으로부터 동이 트기 시작한다.

 

일출이나 멋있게 볼 수 있으려나 기대를 했으나 동봉의 산 능선에 가려져서 올라오고

이미 다 밝아져서야 해를 구경할 수 있었다.

비록 일출을 보진 못했지만 늦게나마 맞이한 태양에게 감사하며 오늘 하루 하산이

완료될 때까지 나를, 아니 엘브루즈를 비춰줄 것을 간절히 바랬다.

 

일단 현재 상태로 날씨는 도와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경사가 심한 동봉의 오르막길을 꾸준히 걷다보니 문제가 생겼다.

이상하게도 순식간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온 몸의 힘이 쫙 빠져나가 너무도 힘이 드는 것이 아마도 몸 상태를 덜 만들어서

산에 온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너무도 힘이 들어 뒤에서 오는 산악인들 몇 명을 앞으로 보내고 조금 쉬고 있으니

속이 메스껍고 오버이트가 나온다.

 

이제 고작 5,000m쯤 올라섰을 것 같은데 이렇게 힘이 들다니 혹시 이것이

엘브르즈의 특징일까?

그러나 다른 산악인들은 나를 추월하며 잘 올라가는 것이 그것은 아닌 것 같고

단지 내가 체력이 부족해 보다 더 힘이 드는 것을 느끼는 것 같다.

 

아래서 바라봤던 엘브러즈는 가깝고 경사도 그다지 심하다고는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나 막상 이렇게 엘부르즈 안에 들어와 보니 멀기는 왜 이리도 멀고 또 경사가 급한지?

일행들을 앞에 보내고 뒤를 따르다 보니 속이 불편하여 도저히 더 이상 진행을 할 수가 없다.

 

먹은 것이 없어 나올 것도 없는데 계속 구역질만 나 두 번을 더 토했다.

산악 가이드 아부가 다가와 "You power out", "You Come back", "You summit problem"을 수시로 외친다.

 

나는 No. I'm possible. I'm summit after die. 하고 콩글리쉬를 외치니 알아듣는 눈치다.

다시 힘을 내어 새들 쪽으로 향하니 가이드 아부는 내 전용 가이드가 돼있다.

아래서 바라볼 때 새들 쪽으로는 경사가 누그러든 것으로 보였는데 막상 진입해보니

끝도 없는 오르막이다.

 

앞을 보니 우리 일행들과 다른 산악인들이 새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짐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 오른쪽 약 5m 정도 떨어진 곳에 돌무더기가 조금씩 튀어나와

있는 곳에 물 한 병과 간식 한 봉지를 데포 시켜놓고(사실은 버린 것임) 일행들이

휴식을 취하는 곳에 당도했다.

 

복숭아 캔을 뜯어먹는데 갈증이 났던 터라 시원하게 먹기는 좋았다.

다시 짐을 확인하니 그래도 먹을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아 건과일 등과 간식을 전부 꺼내어

눈을 파고 데포 시켰다.

더구나 현재까지처럼 좋은 날씨에 다시 이곳까지 돌아오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3시간에서

3시간 30분이면 될 것 같으니 크게 간식이 필요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동봉과 서봉의 안부인 새들에서 서봉을 바라보니 까마득하다.

그래도 여기서 1시간 30분 정도면 정상까지 갈 수 있단다.

T&C의 황석연이 조금 힘들더라도 시간이 충분하니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올라가잔다.

 

다시 서봉이 시작되는 부분의 급경사 오르막길을 힘들게 오르니 조그만 바위지대가

나오는데, 평상시에는 그곳에서부터 약 50m 정도가 아이스 지대라 fix rope를 설치하고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오르던 곳인데 지금은 눈이 많이 쌓여 있어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단다.

 

결국 안전벨트도 필요하지 않을 것 같고, 또한 현재의 날씨라면 우모복도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또다시 짐을 줄이겠다는 생각에 안전벨트와 우모복 상의를 길옆에 데포 시켜놓았다.

말이 데포 시키는 것이지 사실은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다만 돌아오는 길에 제자리에 있으면 회수하면서 내려가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겨우 몇 걸음 걷고 나면 너무도 힘이 들어 스틱에 의지해 쉬다가 또 몇 걸음 걷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정상부에 올라섰다.

 

그러나 여기서도 정상의 동판이 있는 곳까지는 약 30분을 가야한단다.

거의 평지이면서 완만한 오르막을 천천히 걷다보니 엘부러즈의 정점이 보인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산악인들이 올라 정상 등정의 감격을 누리고 있었다.

 

"이제 됐다" 싶은 마음에 힘이 조금 나기 시작한다. 마음 같아선 빨리 뛰어서 정상에

도달하고 싶었으나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아무리 호흡이 가빠도, 아무리 힘이 들어도, 아무리 짐이 무거워도, 아무리 추워도,

아무리 속이 메스꺼워도, 아무리 ??? 할지라도 바로 눈앞에는 정상이 다가와 있었다.

앞의 일행들이 정상에 올라서는 모습을 보면서 약 10분 뒤인 오전 11시 20분에

정상에 당도하였다.

 

정상에 올라서는 순간 정상 비석 앞에 배낭을 팽개치고 쓰러져 버렸다.

잠시 쉰 후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꺼냈는데 밧데리의 잔량이 없어 작동이 안된다.

배낭에서 새로운 밧데리를 꺼내어 넣었는데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만큼 날씨가 차가웠나보다.

 

큰일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해남의 박영태씨가 자신의 카메라는 칩의 용량이 다 돼서

밧데리 쓸 일이 없다며 꺼내주는데 충전 밧데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밧데리를 교체해보니 작동이 잘된다.

다행스럽게도 내 카메라로 증명용 사진을 찍게된 것이다.

 

정상에서 약 50분간 머무르고 하산시작하는데 내려오는 길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햇볕이 강해 눈이 녹기 시작하니 아이젠 바닥에 자꾸 스노우 볼이 생긴다.

이중화 바닥의 스노우볼을 수시로 털어 내며 하산을 하다 마지막으로 버리고 간

안전벨트와 우모복을 찾으니 제자리에 있다.

 

배낭에 챙겨 넣고 하산을 지속하는데 올라 갈 때와 달리 내려가는 길은 일행 중 내가 선두다. 어찌보면 너무도 힘이 들어 빨리 내려가고 싶은 마음 뿐 이었나보다.

발에 힘이 풀려 조금이라도 방심한다면 넘어져서 벼랑끝까지 미끄러질 것 같다.

 

새들까지 내려와 다시 두 번째 데포 시킨 짐을 찾아 배낭에 넣고 먹다 남은 복숭아 통조림을 먹는데 살짝 얼어서 사각사각한 것이 상당히 시원하고 맛있다.

제주팀의 고상선과 전양호 대원에게 고소가 온 것 같다 하산하는데 너무도 많은 시간이

소요 될 것만 같아 걱정이다.

 

조금 누워서 쉬면서 일행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하산을 시작한다.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주위에 아무도 없고 가이드 아부만이 내 옆에 있다.

아부에게 뒤로 가서 일행들을 챙겨 내려오라고 말하고 혼자서 먼저 내려간다.

 

잠시 후 황석연과 아부가 나타나는데 고상선 대원을 슬링으로 매달아서 끌고 내려온다.

또한 그 위에서부터 글리세이딩으로 내려오는데 역시 속도가 붙는다.

나도 아까부터 주저앉아 내려가고 싶었으나 고어텍스 바지를 상할 것 같아 참고 있었으나

모두가 미끄러져 내려가니 나 혼자 너무 늦을 것 같다.

 

결국 바지를 포기하고 글리세이딩으로 내려가는데 너무도 재미있고 빠르게 하산한다.

다른 외국의 등반대들도 걸어가다 말고 모두가 따라서 주저 앉는다.

새벽에 걷기 시작한 파스투코프 바위지대로 내려오니 스노우캣이 기다리고 있다.

 

약 2시간 이상 걸어야할 거리를 30분이 못 걸려 스노우켓을타고 내려왔다.

15:30에 바렐산장에 당도하니 제주산악회 박훈규 회장과 조덕선 고문님이 반겨주신다.

이제야 확실하게 내가 정상을 다녀왔다는 생각이 든다.

 

배낭을 벗어 던지고 같이 모여서 기념 촬영을 하고 휴식을 취한다.

조금 누워 눈을 붙이고 있으려니 박영태가 저녁식사를 하자고 부른다.

아직도 속이 안 좋아 저녁은 먹지 못하고 맥주나 한잔하고 모자른 술은

보드카 한 모금으로 대신했다.

 

이젠 만사가 다 귀찮아 쉬고만 싶은 마음이다.

T&C의 황석연에게 내일 예비일은 내려가서 보내도록 건의했다.

 

(제3부로....)

출처 : 설벽산악회
글쓴이 : 히말라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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