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부제 동봉 등반기(제4부)
이 등반기는
1996년도에 설벽 산악회에서 로부제 동봉을 등반하고 돌아 온 후 작성했던 보고서에 있는 글로서,
잊어버리고 있던 중, 얼마 전 짐을 정리하다 발견되어 다시 워드로 작업하여 올리는 것이며, 1991년 코타
키나발루, 1994년 북알프스 종주 등반 후 네팔 히말라야에서 픽 등반을 최초로 시도하는 당시의 감정을
살리기 위하여 현재의 느낌을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옮겨서 작성 하였습니다.
철 수
4월 24일 흐린후 눈 -7도
06:40 기상... 아직도 어두운데 눈이 떠졌다. 침낭 속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채현과 재명을 걱정한다. 밖으로 나와
운동하고 더운물을 마시니 “쿡”들이 세면 물을 갖다 준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대원들을 깨웠다. 다행히도 휴유증이 빨리
없어지는지 햄 찌개에 아침식사들을 잘도 한다. 나와 조선배님은 오늘 아침도 먹질 못한다. 도저히 먹히질 않는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이제야 나는 고소증세가 오는 것일까? 밥을 포터인 소남과 노르부에게 주고 짐을 챙긴다.
짐을 챙기는 도중 또 채현을 나무랐다. 이제는 안 그래야 할텐데... 그 고생하며 정상에 오른 아이를 나무라다니 다시는
적어도 서울에 도착 할 때까지는 제멋대로, 맘대로 하게 내버려둬야지 정말 기특한 놈인데... 하산을 시작한다. (08:35)
페리체에서 점심으로 감자를 삶아달라며 기다리는데 룻지 안에 계란이 보인다. 1개에 20Rs를 주고 사서 삶아 달라 했는
데, 장작불 위 주전자에 넣고 한참을 끓였음에도 역시 기압이 낮아서인지 속은 하나도 익지를 않는다.
집에 도착한다면... 먹고 싶은 것들이 생각난다. 특히, 삼겹살과 김치, 더불어 인수의 야영장이 생각나다. 팡보체를 거쳐
데보체에 도착(15:00)하여 오늘의 저녁을 맞이한다. 18:00시경 우거지국으로 저녁 식사 후 포터들에게 럭시를 사주니 즐거
움에 춤과 노래로 자신들의 낙천적인 면을 또다시 보여준다. 나이가 가장 많은 포터가 네팔의 민속춤인지, 티벳 춤인지를
기가 막히게 잘 춘다. 그가 춤을 출 때면 모든 사람들이 즐겁게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며 즐거워한다.
정말 잘들 논다. 도대체 걱정이라곤 없는 사람들이다. 입에서 노래가 끊이지 않고 즐겁다. 우리네 삶에서는 오늘은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을까가 걱정일텐데, 이들은 그날의 잠자리나 먹을 것 등이 걱정거리 자체가 못된다. 먹을 것은 가지고 다니
며 되는대로 달바트, 죽, 밀가루부침, 지지미등 아무거면 한 끼다. 140Rs 우리돈 2200원이면 되는 일당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우리가 버리는 모든 것이 이들에겐 소중하다.
만약 다음에 다시 온다면 이들을 위한 옷가지, 양말, 신발, 장갑 등을 준비 해야겠다. 이들에겐 모든 것이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오히려 아무데서나 자고, 아무렇게나 먹고, 아무데서나 일(?)을 해결하니 걱정이 있을 수 없는 것 같다. 정말 착하고
좋은 한편 우리네 생각으로는 불쌍한 것 같은 늘상 같이하고픈 사람들이다. 소남, 밍마, 노르부, 댁 바드루등 5명의 포터들,
사진 속에, 추억, 속에 영원하고픈 이들이다. 그렇게 즐겁게 놀더니 역시 아무렇게나 바닥에서 잘 준비들을 한다.
21:45이다. 내일 또 고생할 우리의 포터들이여 잘자라!
세상속으로...
4월 25일 흐린 후 눈
06:00 기상. 아침부터 찌푸리더니 눈이 내린다. 너무도 운이 좋다. 우리가 정상공격 및 하산 일정으로 잡혀있던 24, 25일
의 일기가 이렇게 좋지 않은데 다행히도 23일에 도전하여 성공했으니 기분 좋은 조식과 함께 하산을 시작한다.
오늘은 포터와 쿡, 그리고 셀파에게 같이 파티를 해 주는 날. 람, 락파와 상의해서 우선 포터에게 달밭으로 저녁식사를
먼저 시키고, 전체일행이 함께 모여 럭시, 창, 럼 등을 마시고 싶은 술로 즐겁게 그리고 끝을 볼 때까지 사기로 했다.
쿰중에 도착하니 오후2시, 2인1실에 300Rs로 호텔방을 정하고, 셀파와 포터들에게 그동안 고생에 대한 보너스를 지급하
기로 한다. 먼저 셀파인 락파와 다와에겐 각각 1,000Rs를 포터 5명에겐 각각 700Rs를 쿡대장과 주방장에게 각 500Rs를,
그리고 나머지 쿡 2명에게는 400Rs를 지급했다. 저녁 식사 후 계획 된 대로 럭시, 창, 럼, 음료수로, 안주는 우리가 먹다
남은 간식 및 부식거리등으로 준비하여 모드들 함께 즐겁게 마셨다.
모두들 많이 마신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소남, 노르부 일행과 락파가 설전을 벌인다. 도무지 무슨 소리인가
알아들을 수 없으나 돈과 관계된 문제인 것 같다. 모르는 척 할 수밖에 없었으나 일당을 생각하니 너무도 적은 액수이다.
영국제 담배 LONDON 1갑이 이곳에서 110Rs인데 이들의 일당이 140Rs라니 정말 말도 안 된다.
우리야 이들의 일당이 싸서 좋긴 하지만.....
고용주격인 락파가 이들에게 좀더 위안거리를 주었다면(일당이야 그렇더라도 다른 인간적인 대우) 오늘 같은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조선배님이 락파의 집에 들렀을 때 창을 많이 마신데다 (나도 취해서 먼저 와서 잠을 잠) 계속
드시니 취기가 있어 보인다. 먼저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침실로 들어가 잠을 자는 것 같다. 술자리를 끝내고 잠도 오지
않아 채현, 재명과 함께 G.S를 했다. 완전히 밤을 새웠다. (도중에 락파와 소남이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4월 26일
쿰중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샹보체로 이동한다. 조금 흐린 날씨 속에 예약이 4월 28일로 되어있는 비행기(헬리콥터)를
앞당겨 타면 카트만두 시내관광을 더 하겠다는 생각에 Asian airline에 락파가 확인하니 어제, 그제 2일간 계속 날씨가 좋지
않아 비행기가 뜨지 못했다며, 오늘은 안 되더라도 내일은 반드시 카트만두로 갈 수 있도록 해주겠단다. 오늘의 비행기도
조금 늦게야 오자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다 떠나간다. 우리도 내일은 카트만두로 돌아가기를 고대하며 비행장 옆에 있는
롯지에서 묶기로 했다.
4월 27일 맑음
07:00 기상. 정상적으로는 08:45 출발예정인 헬리콥터였으나 오후 3시가 되서야 나타나다. 이곳 사람들의 마을 풍경만큼
이나 네팔타임이다. 평화롭기 그지없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는 야크, 조용하고 평화롭기 만한 마을풍경, 노는 아이들
외에는 전혀 뛰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아이들 나름의 천진하게 노는 모습 등이 무척이나 어울린다.
항공사와 씨름 끝에 25Rs식 65kg 의 초과 수하물 요금을 내고 타야 했으니, 경험과 요령 부족으로 핸드캐리해도 될 짐을
같이 무게를 달아 버렸다. 헬기가 이륙하는 순간 우리의 이번 원정도 막을 내리고 있다. 언제 다시 히말라야를 찾게 될지,
아니면 또 다시 하얀 산을 그리워할지를 생각 할 때쯤 비행기가 이륙한다.
아듀! 히말라야 !!!! 다시올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