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부제 동봉 등반기(제3부)
캠프 1을 구축하고...
4월 22일 맑음. -12도
05:35기상. 어제의 작전 회의대로 진행되는 H.C - C1의 일정이 순조롭기를 기대해 본다. 아침(라면+밥)을 먹고 나니
락파가 순조로운 일정을 위한 라마제를 지낸다. 나는 옆에서 채현과 재명의 컨디션이 좋기를 기도해 본다.
07:00출발 이제 본격적으로 네팔에 온 목표를 향하여 출발이다. H.C까지는 꽤 가깝다. 09:00가 조금 못되어 도착한다.
H.C에서 표고차 약 70m를 오르니 우리의 루트가 눈에 잘 들어온다. 이제 포터들은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텐트2동, 자일4동, 2일간의 식량 등 짐의 무게를 감안하면 이정도 고소에서 나를 포함한 우리 대원들이 이겨낼지
의문이다. 여유 있는 일정으로 C1 구축 후 다음날 H.C - C1, 또 다음날 C1의 일정이었다면 오늘 조금 무거운 짐을 지고
운행해도 좋으나, 우리 일정대로 공격 한다면 포터가 C1근처라도 갔으면 하는 마음에 루트를 관찰해 보았다.
H.C 부터는 포터가 없다. 누룽지를 끓여 이른 점심을 먹고 C1의 최 근접 지역까지 짐을 올려 줄 것을 요청하나 셀파는 안
된다고 한다. 내가 별도로 포터를 불러 별도의 대우를 해주기로 하고 포터들을 설득했다. H.C를 출발하여 오르다 보니
포터들은 더 이상 운동화만을 신고는 전진하기 힘들 것 같아 포터들로부터 각자의 짐을 넘겨받았다. 경사가 심한 빙설
구간 및 암설구간을 계속 오른다. 죽기보다 더 힘든 것이 있다면 이 순간만큼은 숨쉬는 것이리라.
죽기로 올라서야 되나 보다. 약 70도의 급경사 빙설구간에서 각자가 오른다. 짐은 무겁고, 숨은 차고, 걸음은 안 떨어지고,
아이젠을 착용하고 또 계속 오른다. 우습게 알았던 빙설구간에서 발이 빠지면서 슬립! 얼떨결에 오른쪽으로 쓰러지며
아이스해머를 휘둘러 찍어보니 제대로 박히면서 제동이 걸린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족히 200m는 날아야 할 것 같다.
C1에 도착하여 신속히 텐트를 설치한 후 짐을 풀고 있으니 고소 증세가 나타난다. 왼쪽 뒷골이 땡기고 아프다. 대원들에게
고소증세를 말은 못하고 그냥 참아본다. 다와 셀파가 커피를 끓여와 비스켓과 함께 먹으니 꿀맛이다. 채현과 재명을 바라
보자니 또 걱정이 된다. 재명은 나가준 힐에서와 같은 증세가 느껴진다고 한다. 그래선 안 되는데....
죽더라도 이 땅에서, 정상에서.... 포터들이 잘 내려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성공적으로 C1에 도착했음을 알리기 위해
B.C와 무전으로 교신하니 조선배님과 람이 포터들은 잘 내려왔으니 염려 말라며 행운을 기원 해 준다. 이곳에서 신고를
하고 무전기를 사용하려면 100$을 내야 한다고 해서 몰래 사용하는 중이다. 텐트 안에 누워 있으니 너무도 아늑하다.
이제는 일기가 문제다. 눈은 계속 오는데.... 내일의 일기가 좋아야 할텐데.... 가장 바란다면, 오늘 그만 그치고 내일은
쨍하여 05:30 공격해서 여기까지 무사히 온다면 만사가 O.K. 자꾸만 혼자서 횡설수설 해진다. 오늘저녁은 라면+죽으로
해야겠다. 고도계는 어디 갔는지? 고소예방약은 어디 있는지? 이제 오후 6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아직도 눈은 계속 퍼
붓고 있다. 텐트 안에 짐을 모두 넣어 놓은 상태에서 잠을 자려니 너무 비좁고 불편하다.
그러나 어쩌랴 빨리 잠을 청해야 5시 30분 이전에 공격의 기회를 잡을텐데... 고소증세로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아 계속
뒤척인다. C1의 높이가 약 5,700m인데 본격적인 산소부족으로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셀파들도 잠을 못 이루다가 새벽에야 잠이 들어 2시간가량 밖에 못 잤다고 한다.
여기는 정상
4월 23일 맑음. -11도
05:00 기상. 계속 뒤척이다 늦잠을 잤다. 벌써 공격이 개시되어야 할 시간이다. 아침식사 준비 및 공격복장을 갖추고
나니 출발된 시간은 06:20이다. 오늘 중으로 공격하고 돌아와야 할 C1을 출발했다. 본격적인 악전고투가 시작됐다.
1조로 락파와 유배명이, 2조로 나와 김채현, 다와의 순서로 자일을 묶었다. 약 60도 내외의 경사의 설사면을 안자일렌
으로 계속 오른다. 1조가 5,850m 고지를 넘어선다. 이어서 바로 나도 따라붙어 넘어선다.
산 너머 산, 계속되는 평균경사 약 70도의 설사면과 간간이 빙면이 나타난다. 개인별로 아이스 바일이 다 필요 없다고
하였으나, 눈 아래는 얼음으로 이어진 빙설혼합사면이라 프론트포인팅을 계속하게 한다. 방심하여 조금 덜 찍으면 슬립
이다. 한 자루의 아이스해머로만 찍고 차고 또 차고, 해머를 뽑아 또 찍고 차고하기를 3~5회를 반복하면 아래서 뭔가(?)가
나올 듯이 힘이 든다. 사람이 죽게 되면 항문을 조여 주는 힘이 없어져 배변을 한다던데 완전히 그짝이다.
조금 쉬고 나면 또 찍고 차고 할 일이 걱정이다. 1조가 나가면 바로 뒤에서 오른다. 너무 힘이 들어 하다 정신차려보니 수
천길 낭떠러지, 아래쪽에 거대한 크레바스가 입을 벌리고, 떨어지기만 하면 바로 삼킬 듯이 노려보고 있다. 힘들여 찍고
오르다 보니, 바로 내 앞에 크레바스가 있어 깜짝 놀라 바라보니 어서 들어오라 손짓 하는 듯 하다.
다행히도 폭이 좁아 그렇게 두려움을 느끼거나 건너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크레바스를 건너며 주변이 무너지지
나 않을까 걱정도 되고, 속을 들여다보니 끝이 보이지 않아 가끔씩 나타나는 크레바스에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락파는 이
숨은 크레바스를 찾느라 계속 피켈로 눈을 긁어내고 찍어가며 선등을 나간다.
채현과 재명의 고소증세가 또 걱정이 된다. 조금만 늘어지는 기미가 보이면 큰소리로 야단을 치고 피켈로 때려가며 독려
와 격려를 해본다. 설사면을 찍어대다 조금 쉴 때쯤이면 뒤로 퍼져서 무지무지하게 가쁜 숨을 몰아쉰다.
이제 해발표고 5,950m를 통과한다. 정상이 눈에 보이기 시작할 때 쯤 또 서쪽으로부터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제발 우리의 등반이 끝날 때까지는 참아주었으면, 빨리 지나가던지 아니면 다가오지 말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어본다.
경사가 훨씬 급해진다. 부분적으로 80도는 되어 보이는 경사가 급한 빙·설사면 앞에서 재명이 이쪽저쪽을 훑어보다 우측
으로 돌아 오른다. 재명이 간 길을 따라 1걸음에 2번 이상의 숨을 헐떡이며 따라 오른다. 너무도 힘이 든다. 이 힘든 오름
짓을 왜 하고 있는 것일까? 순간적으로 후회가 몰아쳐 온다.
나름대로 등산 좀 다녔다고 자부한 내가 직장에서 휴가내기의 곤란함과 집에 처자식에 대한 미안함, 산악회원들의 기대감
등 온갖 복잡 미묘한 생각이 머리를 감싼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꼭 올라야 할 텐데, 과연 될까?
정상이 지척으로 가까워 왔는데도 꼭 올라야 할 텐데, 과연 될까? 정상 턱 밑에 왔음에도 저 곳을 오를 수 있을까? 자꾸만
의문시된다. 우리대원 셋 중 누구도 낙오 없이 Summit 해야 할텐데.....
내가 너무도 걱정하며 조바심내고 안타까워했음일까? 12시 30분 마침내 ROBUCHE는 우리에게 정상을 내주고 말았다.
올라서 있는 정상은 약간의 칼날능선으로 커니스가 있고 양쪽 아래로는 엄청난 크레바스들이 수 천 길 낭떠러지 밑에 있다.
아래에서 특히 로부제의 남쪽방향에서 바라보던 로부제와는 전혀 딴판의 산이었다.
로부제는 동봉과 서봉이 있고 동봉은 트레킹피크로, 서봉은 등반피크로 오를 수 있는 대상지로서, 우리가 오른 동봉은
임자체 보다는 조금 어려운 루트로 정상적인 공격을 한다면 B.C, H.C, C1, Summit, H.C, B.C 철수로 이어져야 무난할 3일간
의 산행이 적당한 것 같다. 그러나 딱 3일간의 잔여일정에 이 같은 계획은 단 한번의 정상시도밖에 안되어 2일로 몰아붙인
것이다. (추후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만약 오늘 공격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이튿날인 24일은 아침부터 눈이 오고 바람이 심하
불어 기상조건이 맞지 않아 등정성공이 희박했음)
정상에서 산악연맹기와 자랑스러운 우리의 산악회기를 들고, 약 10분간에 걸쳐 기념촬영을 하던 중 어느덧 음울한 먹구름
이 몰려왔다. 이제 안전하고 신속하게 하산 하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바위에서나 얼음에서와 마찬가지로 산은 오르는 것
보다 내려가는 것이 어려웠다. 오를 때는 깍아 지른 설벽 등이 그렇게 심하게 느껴지지 않던 경사도가 무지하게 고도감과
경사도를 느끼게 한다.
올라갈 때 별로 확보에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에서도 철저하고 완전한 확보를 설치하고 내려간다. 7~8피치를 확보 후 클라
이밍 다운으로 하산을 계속한다. 시간적으로 조금 서두르면 어둡기 전에 H.C로의 귀환이 가능할 것 같아 무전기를 든다.
우리대원 모두가 너무 기진해 있고, 탈진상태로도 가고 있는 것 같아, H.C 위로 C1까지 포터들이 최대한 올라 올 수 있는 곳
까지 포터를 보내줄 것을 무전으로 연락한다. 일행 중 2번의 추락과 위험을 겪으며 C1으로 하산하니 16:30
곧바로 텐트 철수 및 짐을 정리한 후 다시 B.C로 무전을 쳐 확인한다. 이미 포터들이 출발 했다고 한다. 대원들에게 이 말
을 전하니 조금이나마 위안을 갖는 것 같다. 내일의 일기가 불확실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오늘 하산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아이젠만을 착용하고 거의 다 내려온 나는 돌출된 바위모서리에 아이젠이 걸리면서 앞으로 고꾸라졌으나 기나긴
낭떠러지에서 다행히도 약 20여M를 구르다가 자세가 바로 되면서 바위틈으로 제동이 걸렸다. 앗! 하는 비명소리에 대원들
이 놀랐는지 “회장님”하고 찾는다.
찰나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굉장히도 긴 시간처럼 느껴지며 어디 다른 곳을 다치지는 않았는가? 확인해 본다.
왜 이때 갑자기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의 “조 심슨”이 생각나는 것일까? 엉치뼈 만이 무척이나 아플 뿐 다른 곳은 다행
히도 이상이 없는 것 같다. 지금에 와서 사고가 났다면... 생각하니 너무도 끔찍해 깜짝 놀란다. 털고 일어나 절룩이며
하산을 지속하던 중 앞에서 인기척이 있는 것 같아 불러보니 우리 팀 포터들이다.
고맙고 반가운 마음에 공연히 가슴이 벅차오르며 눈물이 나고 고맙다고 말을 하려니 울먹여만 질 뿐 말이 나오질 않는다.
포옹을 한 후 짐을 넘겨주고, 서서히 발을 절며 스틱에 의지해 하산을 계속하고, 조금 내려오다 마중 나온 람을 만나 또
다시 포옹하니 눈물이 핑 돈다. 어둠이 깔리면서 B.C에 도착을 하고나니 안도감에 텐트 안에 쓰러지듯 누워버린다.
이것일까? 내가 또 오게 될까? 비몽사몽 어지럽기만 하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산행 출발 시 먹은 타이레놀 2알의 약효가 떨어지며 고소가 오는 것인지? 노곤하고 메스껍고 모든
것이 귀찮기만 하다. 구역질이 나와 토하려고 보니 하루 종일 먹은 게 없어 물만 나온다. 약10분간에 걸쳐 서너 번 토역
질을 하니 목은 아프지만 정신은 맑아지면서 춥고 떨리기 시작한다. 타이레놀 대신 하벤을 1포 복용하고, 고소증세 때문
인지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채현과 재명을 위해 식사 준비를 서두른다.
햄 찌개를 해서 회원들에게 먹이려 하나 만사가 귀찮은 것 같다. 나 역시도 도저히 먹히질 않아 결국 모두가 저녁을
굶고 21:00경 잠자리에 든다. 조선배님은 감기 몸살로 하루 종일 앓으셨다는데 걱정이다.
걱정되어 쑥찜팩 2개에 우모복 2벌, 우모 바지 등으로 최대한 보온이 되도록 깔고 덮어준 후 나도 곧바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