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산

매킨리 등반기(제3부) - 아~ 매킨리~~

히말라야2 2008. 9. 18. 13:34

 

아~ 매킨리


 

2006. 6. 27.(화)

 

 

 

6시에 일어나서 소변을 보러 나가보니 정상에 약간의 구름만이 있을 뿐, 아주 좋은 날씨인 것 같아

아쉬움은 더하다.  10시에 다시 일어나 깨어보니 구름 한 점 없이 좋은 날씨다.

오늘 오후라도 다녀왔으면...

 

주위에 있는 다른 4팀은 느지감치 등반에 나선다.

다른 팀들과 합류하여 등정 길을 같이 하고픈 맘이 굴뚝같다.

미치겠다... 함께한 동료들이 너무도 야속하다.........

 

하루 종일 좋은 날씨 속에서 무료하게 지내려니 정말로 너무도 아쉽다.

일행들이 야속하다. 아니 미워지기 시작한다.

능력도 안 되는 사람들이 욕심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늘이 주시는 기회는 두 번, 세 번이 아닐텐데...

내가 매킨리를 또 다시 올 것도 아니고, 처음이자 마지막의 길에서 내게 정상을 위해 주어진 시간은

27일부터 30일까지 단 4일뿐인데.....

 

오늘 정상을 다녀오는 팀은 4팀이나 되었다. 모두 성공했단다.

그 중 두 팀은 어제 우리와 같이 올라와서 정상을 다녀온 것이다.

저녁을 먹은 8시에 Tim이 일기예보를 체크한바 내일은 약 30마일의 바람이 불고, 모레 이후에는

 

40마일 이상이며 스톰이 올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결국 내일 승부를 걸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역시 내게 있어 매킨리는 오늘이 궁합이 통했었던 것 같다.

 

내일은 정말로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다.

배낭에 우모복, 장갑, 행동식, 물 2리터, 미숫가루 한통, 카메라, 깃발, 모자(바라클라바), 고글, 오버슈즈,

핫팩(손,발), 썬크림, �크림 등을 배낭에 챙겨 넣고 안전벨트와 기어걸이, 크램폰, 피켈 등을 가지런히

 

챙겨 놓은 후 10시에 취침에 들어갔다.

내 우려(기상이 안 좋은 일)가 조금씩 현실로 들어나는지 제법 바람이 강해지기 시작한다.

텐트가 심하게 흔들린다.  잠이 오지 않아 내일의 날씨에 대한 기도에 들어갔다.

 

 


2006. 6. 28.(수)

 

 

 

새벽 3시에 소변을 보며 날씨를 보니 맑은 가운데 바람이 잔다.

내심 지금 정도만 유지되기를 바라다 6시 30분에 기상하여 나와 보니 정말로 일기가 좋다.

맑은 가운데 미세한 바람만 있고 Tim, Greg와 악수를 하며 정상에서 하이파이브를 하자며 엄지도 치켜세웠다.

 

어제 정상에 올랐던 팀들도 하산준비를 하다 마주치자 좋은 날씨를 축복해주며 "Good Luck"을 외쳐준바.

스프 한 잔씩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간식을 챙겨 넣고 홍삼액, 장약, 타이레놀, 아로나민 등을 챙겨 먹으니

컨디션은 Very Good이다.

 

조 편성을 다시 하여 선등 조에 Tim, 나, 용주형, 빅샘이 서고 후미 조에

Greg, 신경섭선배, 박병철씨, 김인백씨가 포진했다.

발등에는 붙이는 핫팩을, 윗주머니 양쪽에는 비비는 핫팩을 넣고 나니 어지간한 추위는 걱정 없이

 

정상을 향해 발길을 내딛었다.

때마침 데날리패스의 하단 부분에는 따스한 햇살이 비추고 있어 내게 매킨리의 문을 열어주는 것만 같았다.

데날리 패스는 오전에는 햇볕이 들지 않는 곳이라 무척 추울 테니 준비를 단단히 하도록 극성들이다.

 

조금 전진하자 헤드월 보다는 경사가 조금 약하지만 Fix rope가 없는 곳으로 미끄러지면 죽지는 않겠지만

상당히 아래로 날아가는 곳이다.

4명이 안자일렌을 하고 구간별로 픽스로프가 설치되어 있었기에, 중간 중간에 박혀있는 스노우 바에

 

카라비나를 통과 시키며 조심스레 한발 한발을 내어 딛는다.

중간쯤 올라서자 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마음속으로 제발 저 구름이 스쳐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중간에 바람도 제법 불어오니 안면부 동상이 걱정되어 바람을 피해 고개를 돌이면서

“바람아 자라”, “자라”, “자라” 기도를 한다.

데날리패스를 3분의 2정도 올랐을까?

 

팀과 그렉이 무전을 주고받는다.

별일 없으려니 생각했으나 후미 조에서 신경섭 선배가 3번씩이나 미끄러져 떨어지는 등 등반이 힘들 것 같아

철수를 했다고 한다.

 

우리 뒤에 출발했던 3명의 외국팀이 후미 조를 추월하여 뒤 따라온다.

조심과 고생 끝에 약 3시간이 걸려 데날리패스 위에 올라섰다.

이제 정상 길의 반은 성공한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구름을 동반한 강풍이 불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Tim이 철수를 결정한다.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Tim에게 사정하고, 빅샘에게 협박하고, 하늘에 대고 기도하며 외치고 울부짖으며,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으나 날씨는 점점 악화되는 것 같다.

뒤따라 왔던 3명의 외국팀이 먼저 철수를 한다.

 

Tim이 빨리 배낭을 메고 철수를 하자고 서두른다.

조금 더 있으나 날씨가 더 악화되어 철수를 하면서도 위험하단다.

나는 이번 원정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나머지 2일 동안에는 날씨가 좋아질 기미가 없다고 생각되고,

 

지금 여기서 철수를 한다면 그것이 곧 이번 원정의 실패임을 직감한다.

설벽 깃발과 키친타월에 쓴 용두팔산악회 깃발(키친타올에 립스틱으로 쓴)을 들고 내가 오른 매킨리의 최고

도달지점인 데날리 패스 위에서 눈물을 흘리며 사진을 찍었다.

 

눈을 동반한 강풍은 점점 거세어져만 간다.

신을 불러대고 바람이 잦아들기를 아무리 애원해도 잦아들지 않는 바람은,

나에게 매킨리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용주형과 함께 정상 길을 고집했으나 야속한 Tim은 철수를 명령한다.

눈물을 머금고 하산할 수밖에 없는 나는 자연 앞에 마냥 나약하기만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렇게도

야속할 수가 없었다.  배낭을 정리하여 둘러메고 철수를 시작한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데날리 패스 하산 길은 정말로 위험했다.

급경사에 화이트아웃까지 겹쳐 극도로 주의를 요해야만 했다.

몇 번씩 위험한 순간을 느끼며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Camp로 돌아오니 어제 산행을 하지 못한 것이

 

너무도 아쉬운 생각에 모두에게 불만만 쌓인다.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정상에서 한 모금 하려던 정상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니 곧바로 취해서 뻗어 버렸다.

술에 취해 신음 소리만 끙끙 대며 앓다가 밤 10시가 조금 넘어 술이 깨는 것 같아 컵라면에 알파미를 말아서

 

한술 뜨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밤새도록 바람은 잘 줄 모르고 텐트를 흔들어대더니 새벽녘에야 잠잠해 지는 것 같다.

정말로 이곳이 매킨리임을 실감나게 하는 눈보라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