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설산 산행기
(이 산행기는 함께 동행했던 산악인 임경남씨가 작성 한 글 입니다.)
항상 그렇듯이 해외 산행은 나에게 설레임과 불안감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여름에 몽블랑을 가기 위한 전초전으로 나는 대만 설산을 선택했다.
4000미터가 조금 모자란 설산을 선택한 것은 단순히 호기심으로 고소에 적응하는 발판이 필요했기 때문도 있지만
연휴가 짧은 관계로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놀라운 사실은 떠나기 전 설산에 대해서 사전 조사도 없이 그냥 갔다는 일이다.
무모 했다는 이유는 산행 도중에 일어났다..
5월1일 설레는 마음으로 인천 공항을 밟았다.
내가 제일 늦게 도착해서 다른 사람들은 짐을 다 부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유는 하루 전날 리무진회사에 예약을 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연휴라 내가 원하는 시간의 리무진 예약이 다 끝나버려서
간당간당 하는 시간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대만 타이페이 공항에 도착해서 바로 점심을 먹고 설산 아래에 위치한 무릉농장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5시간 정도 소요가 되었는데 중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 준비를 안 해서 하는 수 없이 휴게소에서 우산을 샀는데 100원이란다. 우리 돈 곱하기 40을 하면 되니까 4000원이다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가격이란다. 숙소에서는 한방에 5명씩 잤는데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집 나오면 고생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5월2일 새벽2시 기상.
죽이 나왔는데 실컷 먹으래서 3공기나 먹었다.
나는 산에서는 배가 든든해야 산에 오를 때 고생스럽지 않다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겪은 바 있어 저장 할 수 있는 한
저장했다. 특히 고산에서는 밥이 모든 걸 잊게 해 주지. 다른 행동식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몸소 겪어서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산장에 두고 갈 짐과 가져 갈 짐을 분리해서 칠찹산장에 맡겨 두고 산행이 시작되었다..
원래는 369산장에서 자야 되는데 신청이 늦어서 칠찹산장에서 자는데 그것도 내려와서 자는 것이다.
비가 많은 산이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산신령이 도왔는지 날씨는 아주 쾌청했다..
2500미터를 넘으니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고소가 오기 시작했으나 약을 먹지 않고 견뎌 보기로 했다..
처음부터 고소가 오면 차라리 낫다는 말도 있다.. 서서히 적응이 되면서 올라가기 때문이다..
점심은 삼각 김밥 3개에 컵라면 1개.. 3시30분부터 산에 오르기 시작해서 2시간 조금 지나니 배가 고파서 김밥 한 개를
먹었는데 죽 먹은 것은 어디 갔는지 맛있게 먹고 꾸준히 오르기 시작했다.
나만의 페이스대로 오르니 일행들이 너무 쳐져서 부담을 느끼는 순간에 임순만 대장이 선두 가이드를 먼저 따라 올라
가라고 하기에 안심하고 천천히 려안순(선두 가이드)을 따라 경사진 산길을 얼마나 올랐을까 탁 트인 전망대에 곱게
뻗은 능선이 나를 손짓한다..
맞은편에 남호대산. 중앙첨산이 그 위용을 드러내며 한껏 뽐내는 자태로 우뚝 서 있다..
넓게 드리워진 수많은 산과 끝을 알 수 없는 높은 산들이 부럽기 만한 시간이었다.
설산은 대만에서 2번째 높은 산이지만 1번째인 옥산과 비교를 한다면 설산은 조망이 아주 아름답기 때문에 많은
산사람이 찾는 산이다.. 설산의 특징은 100m마다 통나무로 얼마만큼 올라 왔는지 알 수 있게 표시가 되어 있어서
마음이 상당히 안정이 되고 기대감을 가지고 오르게 되어 있어 좋다.
3100m 정도 오르니 동봉이 눈앞에 서있다.
동봉에 오르니 369 산장도 보이고 시야가 확 트여서 그야말로 볼 수 있는 건 다 보였다.
시계가 좋으니 산신령한테 감사가 절로 나왔고 보는 것 마다 카메라에 다 담지 못하는 내 능력 부족함에 아쉬움만
가득했다. 369 산장에 도착해서 컵라면과 김밥으로 식사를 했는데 난 점심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아침 9시 조금 지나
있었던 것이다. 작년에 369 산장 뒤에서 화재가 있어서 식수가 공급이 안 되었었는데 다행히 우리가 갔을 때는 복구가
되어서 유용하게 식수를 사용했다.
3인 가족팀이 더 이상 산행을 못 한다고 해서 산장에 남겨두고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밥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가파른 산을 오르는 데는 상당히 힘이 들었다..
힘든 시간을 얼마나 견뎠을까? 까무잡잡한 흑삼림이 시원한 공기로 더위와 힘듦에 지친 우리를 샤워 해 준다.
중간 중간에 불어 주는 바람은 정말로 상쾌했고 청정 지역에서 맛보는 상큼함은 우리를 기쁘게 만들었다.
가끔씩 보여 주는 두견화의 자태는 곱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런 소소한 것에 마음을 뺏기며 얼마나 올랐을까? 드넓은 분지가 시야에 확 들어오며 내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묘한 분위기에 취해 있는데 가이드가 사진을 찍어 주겠다는데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 기분을 그 어떤 것 하고도 바꾸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짜릿한 순간이었고 눈이 약간은 있을 거란 기대는 무너졌지만
추위에 약한 나는 다행이라 여겼다. 그 자리에서 스웨덴 노인을 만났는데 70이 넘어 보이는 나이에도 산에 대한 열정은
정말 대단한 분이었고 같이 정상까지 동행 하자고 하니까 먼저 가란다.
정상 까지는 1시간여를 가야하는데 그곳이 하이라이트이자 고비였던 것이다.
약간의 너덜지대는 발을 잘못 디디면 미끄러지기 아주 십상이어서 조심조심 한 발 한 발씩 내디뎠다.
햇빛은 너무 강렬해서 눈이 부시고 길은 지그재그. 얼마나 올랐을까? 고사목이 드러누워 있는 모습이 아주 장관이면서도
신기했다. 모두 다 앉은뱅이 고사목이다.
하나하나 다 내 눈에는 신의 작품으로 보였다.
그렇게 정신을 빼앗기고 있는데 가이드가 정상이라고 소리 질러서 가보니 3886m라고 씌어 있는 설산 주봉이 눈에 확
들어오며 해 냈다는 자부심이 가슴에 꽉 차 올랐다.
고생한 대가가 다 보상 되는 순간을 차 한 잔을 마시며 여유 속에 주변의 산들을 다 내 머릿속에 담았다..
우리 팀은 보이지도 않고 난 내려가서 저녁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기다리느니 아주 천천히 하산을 하기로 했다.
항상 하산은 많은 부담감이 든다. 올라 갈 때는 잘 느끼지 못한 계단의 턱과 모난 바위들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1시간 정도 내려 왔을 때 우리 팀과 만날 수 있었다.
모두들 지쳐 보였고 보이지 않는 정상 때문에 발걸음은 천근만근. 내려가서 저녁을 지어 놓겠다고 하고서 아주 천천히
369 산장에서 쳐진 가족과 같이 칠잡산장까지 내려오니 오후4시30분. 꼬박 13시간을 걸어서 설산 산행을 하루에 마친
것이다.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하는데 난 윈드자켓이 필요 없을 거라고 관광차에 실려 보낸 실수로 추위에 시달려야 했다.
다운 함량이 500g인 침낭은 얇고 바닥은 너무 딱딱해서 오래 누워 있기는 곤란했다.
그래도 참치 찌개에 푸짐한 저녁을 먹고 누운 산장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곧바로 잠에 곯아떨어지기는 했지만 어느
순간 잠에서 깨어났을 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코고는 합창 소리는 내가 무사히 대만 설산 산행을 마쳤음을 일깨워 주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도전한 해외 산행은 막을 내린다.
힘들었다고 지금 와서 얘기 하지만 고생하지 않은 산행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고생을 즐겨야 내 인생의 한 장의
역사로 남아 있지 않을까?
이번 산행을 마치고 내 자신한테 얘기한다.
고생했다고. 그리고 사랑하며 다음도 부탁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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